눈을 뜨는 일이 버겁다. 발로 이불을 걷어내고도 한참을 누워있다 '끄응' 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켜 본다. 아무래도 오늘은 그런 날인가 보다.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일들에 흙 주머니가 하나씩 채워지는 날.
우울증은 우울한 기분을 일컫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병력이 긴데 비해 우울증이 없어 다행이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은 '우울'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불안해도, 무서워도, 화가 나도, 속상해도 그 어떤 순간에도 웃을 수 있었으니 나는 좀 멋진 사람이었다. 엄마는 사람들에게 내 딸이지만 참 성격이 좋다고 자랑을 했고, 그 말이 싫지 않았다. 20대 초반 폭풍 같던 병원 생활조차도 칭찬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으니 더 말해 뭐하겠는가. 그게 뭐라고. 멍청하게.
어느 날, 썩 좋지 않은 기분으로 휘적휘적 집으로 걸어가다 나도 모르게 길목에 있던 벤치에 털썩 앉아버렸다.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왜지? 왜? 굳어진 얼굴의 나에게 물었다. 이런 얼굴로 들어가면 엄마, 아빠가 걱정하잖아. 그랬다. 누군가가 나로 인해 신경을 쓰는 일은 없어야 했다. 생생히 기억난다. 그 이상했던 순간이. 웃을 수 있을 때까지 한참을 앉아 있었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며 나는 웃고 있었다. 왜 집에 들어갈 수 없냐고 묻던 썩 좋지 않은 기분의 나는 웃는 얼굴 뒤에 숨긴 채.
그날 이후 종종 웃음 뒤에 숨은 나를 만났다. 그는 웃는 거 말고 화를 내거나 울거나 소리를 지르는 건 할 수 없냐고 물었지만, 나는 울 것 같은 눈을 하고 결국엔 또 웃어보였다.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어.
그렇게 숨은 감정들은 남은 찰흙 덩어리처럼 뭉쳐졌고 아주 오래 아주 천천히 내 일상의 발목에 하나씩 무게를 더해 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일상이 무너졌다. 우울증은 그런 것이었다.
처음엔 그저 피곤해서라고 생각했고, 나중에는 게을러서라며 스스로를 탓했다. 영양제를 챙겨 먹고 내일은 좀더 부지런해지리라 다짐도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래, 우울증은 그런 것이었다.
아침에 눈을 떴으나 몸을 일으키는 일에 결심이 필요하고, 다 차려진 밥상의 숟가락을 드는 일에 젖 먹던 힘까지 끌어올려야 했던 그 순간. 나는 내가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마음의 일이 물리적인 무게로 치환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 무게가 저절로 가벼워질 수 없다는 것도.
정신과를 찾았고 약을 먹기 시작했다. 점점 일상이 가벼워지는 상황에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시간의 흐름만큼 우울의 무게는 조금씩 덜어졌다. 차차 밥을 제대로 먹고 일부러 기운을 내지 않아도 화장실을 갈 수 있게 되었다. 너무 사소해 잃어가고 있는 것도 몰랐던 그 시간들이 끔찍했고 돌아온 작은 일상들이 너무도 귀했다.
이제 병원 약은 더 이상 먹지 않는다. 하루의 무게는 내가 짊어질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힘에 부쳐 조금씩 미뤄두는 일들은 있지만 예전처럼 치이지는 않는다.
가끔 오늘 같이 무거운 날이 있긴 하지만 괜찮다. 웃으라며 강요하지 않고 몸과 마음이 허락하는만큼의 속도로 천천히 하루를 보내면 내일의 나는 조금 회복이 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천천히 발효된 우울을 한 숟갈 떠 먹고 내일 딱 그만큼 면역이 생기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