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각두건 Jul 20. 2023

자기소개

안녕하세요. 저는 주요 우울장애 환자이자 전문상담사인 각두건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주요 우울장애 환자입니다. 그리고 전문상담사이기도 하죠.




 어딘가 새로운 모임에 가서 나를 이렇게 소개한다면 어떨까? 누군가는 웃기고도 모순되었다고, 어떤 이는 대단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도 묘한 것 같긴 하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적 역할(예를 들어 직장인으로서의 나, 딸로서의 나, 연인으로서의 나 등)에 맞게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주 5일 동안 전문 상담사로, 하루에 3번 약을 먹거나 병원을 가거나 상담을 갈 때는 주요 우울장애 환자로 분한다.


 내가 만난 모든 의사 선생님들과 상담 선생님들, 그러니까 심리학과 정신의학의 전문가들은 이렇게 말했다.

 "경험이 있으시니까 그만큼 내담자에게 공감하기 쉬울 거고, 그들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분명 일에 도움이 될 거예요."

 나를 위로하려는 말인지, 실제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말들이 그나마 나를 살렸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 엄마가 나의 심리학과 진학을 반대하면서 하던 말은 이랬기 때문이다.

 "네가 그 따위인데 누굴 상담하겠다는 거니?"


 난 오랫동안 우울감과 자살사고에 시달려왔다. 내가 뭘 느끼는지 모를 나이인 초등학교 3학년 때 쯤부터 종이 뒷면에 자살 계획을 세웠다. 그런 네가 누굴 상담하냐는 말, 그 말이 비수가 되어 10여년 뒤 내 발목을 붙잡았을 때 나는 이미 처참히 망가져 있었다.

 각종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엄마의 말이 틀렸다고, 그런 게 아니라고 나에게 설명하고 위로해주고 싶어했다. 때로는 맞는 것 같다. 내담자들이 느끼는 고통을 잘 알기 때문에 진심으로 공감이 가능하고, 내담자들도 나의 진심을 느끼며 라포가 형성된다. 그러나 반대로, 그들의 고통을 너무 잘 알아서 내가 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일 때도 많다. 아마 그만큼 숙련되지 못했고 훈련이 덜 됐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때로는 생각한다. 차라리 저 이의 마음을 몰랐으면 좋았을 걸. 내가 나를 통제할 수 있을 정도로만 고통을 느껴보고 말았으면 좋았을 걸. 나는 이미 너무 많은 늪을 건너와서 온 몸이 푹 젖은 채로, 천천히 진흙 속에 빨려들어가며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나 자신을 느낀다. 나를 도와달라는 손길이 아니라, 흙이 잔뜩 묻었어도 당신을 도우겠다는 간절한 손길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