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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t a Fan Aug 04. 2024

어제의 실수가 오늘의 인내로

엄마의 기록 #1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이는 잠들 생각이 없다. 오늘도 내 입은 잠자리 동화를 들려주다 소재가 마르고 닳아서 생각 없이도 부를 수 있는 자장가가 무한재생되는 중이지만, 머릿속은 재운 뒤 해야 하는 일들로 이미 건너뛰기한 상태다.



며칠 전에도 같은 상황이었다. 자동차 좋아하는 취향에 맞춰 열심히 이야기도 들려주고 주크박스처럼 원하는 노래도 불러주고 있는데, 뒤척이고 일어나는 것을 넘어 나랑 장난을 치려고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타일렀다.


“얼른 자자.”

“이제 자야지.”


그러다 말도 안 나오기 시작했다.


“어허“

“쓰읍“


“하.......................”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도 안 자고 싶어서 안 자는 게 아닌 걸 알면서도 밤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고 매번 내 마음대로 안된다는 사실에 분노가 찰랑거리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그만하라고 소리칠, 아니 친절하게 말할 용기가 나질 않았던 나는 벽에 소리가 나도록 내 머리를 쿵쿵 박았다. 이 와중에 물을 달라고 하는 아이의 말에도 입술 꽉 깨물고 “알았어, 물 갖다 줄게!” 말했지만, 결국 화를 이기지 못한 채 문을 꽝 닫고 나왔다.


소리를 듣고 놀라 서재에서 나온 남편이 상황 파악 후 나를 대신해 방으로 들어가 아이를 재웠다. 잠시 숨을 고르고 나니 방금 전 했던 나의 행동이 부끄러워졌다.


그날도 여느 주말과 같이 혼자 아이를 본 날이었다. 평소에 일하느라 몇 시간 보지도 놀아주지도 못하는 마음에 늘 짠했는데, 막상 하루종일 아이에게 끌려다니니 그 애틋했던 마음도 또 금세 사라졌다. 낮잠도 재우려다 포기했던 터라 저녁에는 좀 일찍 자려나 기대했는데, 그마저도 좌절되니 그런 마음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줬으면 좀 자야지!”


이렇게까지.


내가 정한 '이렇게까지'의 선은 과연 어디까지였을까.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 하니 내 실속과 유익도 챙겨야 하겠는데, 아이의 행복이 나의 행복과 직결되기도 하니 아이를 위해 시간을 내고 내 편의를 내려놓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라는 사람이 육아에 대해 가진 한계치가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오늘도 어제 그리고 그제와 같이 아이가 금방 잠들지 않는 날이었고, 다시 눈을 질끈 감을 정도의 짜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습관이 된 것처럼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 이성이 붙어있는 이상, 이전과 같은 행동을 반복할 수는 없었다.


어둠 속 희미하게 비치는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옹알옹알 흥얼흥얼, 이전에 들었던 이야기와 단어 그리고 노랫가락이 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이에게 조용히 물었다.

"아가, 잠이 안 와?"


아이는 내 목소리가 반갑다는 듯,

"응!" 하고 대답했다.


나는 아이에게 눈을 꼭 감고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말했다. 아이는 눈가에 옅은 주름이 잡히도록 두 눈을 꼭 감았다. 참 사랑스러운 아이인데. 아이도 가만히 바라보아야 더 사랑스럽구나, 싶었다. 오늘은 한술 더 떠서 "엄마 이쪽에 누워, 아니 반대쪽에 누워서 이야기해 줘"라고 주문하지만, 기꺼이 그래준다. 한참을 더 자지 않을 것 같았던 아이가 드디어 잠에 들었다. 밖으로 나와보니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배우면, 고민하면 바로 엄마가, 아니 좋은 엄마가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세상에 바로 잘 되는 게 과연 얼마나 있을까. 몇 년 동안 한 분야를 전공했어도 막상 그 일을 시작하면 내가 지금까지 뭐를 공부했나 싶을 정도로 초짜 신입이 되기도 하고, 예쁜 몸을 만들기 위해 식단을 바꾸고 열심히 운동해도 원하는 결과는 몇 주, 몇 달 혹은 몇 년이 걸리기도 하는데 말이다.


엄마라는 역할도 마찬가지일 텐데, 이것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아니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빠른 속도로 자라는 아이에 맞춰 내가 같이 성장하지 못하고 그 변화를 수용해 나가지 못할 때 "괜찮아, 그럴 수 있어, 너도 배우는 중이잖아" 하며 다독이는 것이 아니라 자책하고 괴로워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는 한 인간을 실수 없이 잘 키울 수 있다' 생각한 나의 오만이었다.



아이가 방에서 강냉이 과자를 들고 나오더니 말한다.


"엄마 이거 릴리 이모가 왔을 때 같이 먹었지."


한 달 전에 집을 방문했던 이모를 기억하는 아이를 보며 처음에는 신기했다가 순간 뜨끔했다.


'그럼 내가 했던 모든 행동들도 생생히 기억하려나?'


만약 기억하고 있다면, 그것이 아이에게 상처가 되었다면,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 쭈욱 잘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고, 오늘 하루만은 같은 실수를 결코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하루 하루가 쌓이면 나도 꽤 괜찮은 엄마가 되어 있지 않을까?


그렇게 어제의 실수가 나의 호랑이 선생님, 오늘의 인내와 지혜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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