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렴
그날 아침, 아이의 기침소리가 달랐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나는 묵직한 소리.
체온계를 꺼내보니 숫자는 39도.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뭐 때문이지..?
부랴부랴 간 병원에서는
입원을 권했다..
7개월 아기를 데리고
이유식부터 분유, 젖병, 기저귀, 수건, 손수건, 담요까지.
거의 이삿짐 수준으로 싸 들고 병원으로 향했다.
정신이 없어서 울 틈도 없었다.
이틀 전 했던 물놀이가 화근이었을까..
마음이 너무 아팠다.
링거를 잡을 때 세 번 만에 성공했다.
그 사이 아이는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자지러지는 아이를 붙잡고..
미안해를 속삭이며 그렇게 안았다..
그 작은 손에서 피가 맺히는 걸 보는 게
세상에서 제일 고통스러웠다.
병실이 없어 4인실에 배정되었고
그 좁은 공간에 가족 셋과 짐들이 함께 들어갔다.
그날 밤은 정말 ‘생존’이었다.
평소 잠자리가 불편하면 잠을 못 잤기에.. 밤을 새웠다.
그래도.. 나머지 아이들이 찰떡이를 너무나 잘 챙겨주었다.
옆에 있는 보호자들도
누가 봐도 초보엄마인 나에게
괜찮다며 위로해 주었다.
다음날 특실로 바로 배정받았다.
남편이 없었기에 혼자서 4인실에서 아기띠를 하고
짐을 다 옮겼다..
서러웠다.. 글을 쓰는 지금도 서럽다.
이제 기어 다니는 아기한테 있는 링거줄을 보니..
계속 내 잘못 같아 미어졌다..
4일째 되던 날 라인을 바꿔야 한다 했다.
두 번째 주사 때는 혈관이 잘 잡히지 않았다.
여섯 번을 찔렀다..
나는 문밖에서 울지도 못하고
그저 서 있었다.
간호사가 말했다.
“엄마가 너무 불안해하시면 저희가 더 어려워요.”
그 말에 나는 숨을 죽였다.
난 문밖에 서있었을 뿐인데...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이
그렇게 무겁게 내려앉은 날은 처음이었다.
결국은 링거를 꼽지 못했다..
엄마가 오전마다 2~3시간 정도 와주셨고
나는 그 시간 동안 밥을 겨우 삼켰다.
결국 5일차.. 나도 링거를 꼽았다.
남편은 여기로 퇴근해서 새벽에 출근했고
우리 가족은 혼돈의 카오스였다.
그래도 잘 버텨주는 찰떡이가 고마울 뿐..
며칠 뒤, 퇴원하던 날.
가방을 메고 손에는 또 가방을 들고
찰떡이를 안은 채 병원을 나섰다.
햇빛이 그렇게 눈부실 수가 없었다.
“이제 괜찮겠지…”
그렇게 되뇌며 걷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도움을 구할 곳이 없는 것이..
서러웠고.. 육아 중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
그러나.. 잘 버텨냈다.
그날 처음 알았다.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작고 연약한 아이를 지켜내는 부모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