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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의색 Oct 27. 2024

기침이 옮다.

6편

그 돈으로 아내에겐 고급 핸드백을, 딸에겐 피아노를 사주었다. 가족들의 웃음꽃이 집안에 가득했다. 최 씨는 뭔가 가장노릇을 하는 것 같아 뿌듯했다. 그러나 불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거리에는 실직자들이 넘쳐나고, 폐업하는 가게들이 속출했다. 뉴스에서는 매일같이 기업들의 도산 소식을 전했다. 최 씨는 가슴 속 깊이 쌓인 불안과 함께, 자신이 서명한 보증 서류가 큰 위험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그는 잠 못 이루는 밤마다 아내와 딸의 얼굴을 떠올리며 자책했다. '내가 과연 옳은 결정을 한 것일까? 이들이 내 결정을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 행복도 잠시, 어느 날 친구에게서 연락이 끊겼다.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최 씨는 친구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거기엔 텅 빈 사무실만이 그를 맞이했다. 그리고 그는 곧 경찰의 연락을 받았다. 친구는 사기 혐의로 수배 중이라는 것이다. 최 씨의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그가 섰던 보증금은 천문학적 숫자였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최 씨는 술병을 든 채 비틀거리며 집에 돌아왔다. 아내가 달려와 부축했다.

"여보, 당신 왜 이래요? 도대체 무슨 일 있었던 거예요?"

"다 끝났어 우리 인생 끝장났다고!"

최 씨는 술병을 탁자에 내동댕이치며 소리를 질렀다. 아내는 불길한 기운에 휩싸였다.

"대체 무슨 소린지 설명해 봐요. 끝장났다니, 무슨 끝장이요?"

"여보.. 내가 보증을 섰어. 보증 섰다가 다 날렸어. 우리 전 재산 다 날아갔다고!“
 최 씨는 아내에게 하는 소리인지, 세상물정몰랐던 자신에게 하는 소리인지 모를 외침과 함께 주저앉았다. 
 
 아내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최 씨의 결정에 절망과 배신감이 뒤섞인 눈빛이었다.

"당신이 어떻게 가족 몰래 그런 결정을 한 거예요? 어떻게 그럴 수가있어요? 우리 삶을 통째로 걸어버린 거잖아요!"

"미안해 정말 미안해"

최 씨는 술기운에 휘청거리며 사과했지만, 아내의 분노는 가시지 않았다. 그 순간 침실에서 나온 딸이 눈치를 보며 묻는다.

"엄마, 아빠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내는 딸을 품에 안고 흐느꼈다.

"아빠가 우리 가족을 버렸어. 우리 인생 망쳐 놓았다고"

최 씨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가족의 눈빛에 서린 좌절과 아픔에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 날 이후, 집으로 사람들이 찾아오고, 최 씨는 빚쟁이들을 피해 여기저기 도망치듯 옮겨다녔다. 그리고 집에는 빨간 딱지가 붙었다. 몇 주만에 집에 돌아온 최 씨는 거실 구석에 앉아 술을 먹고 있었다. 맨 정신으로는 견딜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 당시 최 씨는 극도의 불안감과 죄책감으로 뒤엉켜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빨간 딱지들을 외면한 채 술을 먹고 있는 최 씨를 본 아내는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이혼해요. 우리” 아내는 마음을 굳힌 듯 딱딱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시달리며, 몇 달동안 힘들고 지쳤던 시간들을 떠올렸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생각과 딸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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