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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의색 Oct 27. 2024

기침이 옮다.

7편

최 씨는 술에 취해 흐릿한 눈으로 서류 봉투를 바라보았다. '이혼'이라는 두 글자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뭐? 이혼? 지금 당신 뭐하는거야??“

"이렇게 살 수 없어요. 당신도 알거에요. 우린 이미 끝났어요..“

아내의 목소리는 차갑고 메마르게 느껴졌다. 술기운에 취한 최 씨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말도 안 돼! 내가 아직 여기있는데 무슨 이혼이야? 당신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당신 우리 딸 수아는 생각 안 해? 나라도 애랑 따로 살아야 할 것 아니야!!!! 책임도 질 수 없는 일을 저질러 놓고, 애꿎은 우리 아이까지 희생시키려는 거야?”
 최 씨는 온몸이 더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술기운인지, 자신도 모를 감정이 울컥 올라와 술병을 벽으로 던져버렸다. 그도 잘해보려던 것이었다. 불안하긴 했지만 이렇게 까지 일이 잘못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술병이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 났다. 날카로운 유리 파편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아내는 움찔하며 몸을 떨었다. 최 씨의 폭력성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었다.

"당신 지금 뭐 하는 짓이에요? 우리 딸이 보고 있잖아요!"

침실 문이 열리며 수아가 고개를 내밀었다. 겁에 질린 눈동자로 아빠를 바라보는 딸의 모습에 최 씨의 숨통이 막혔다. 하지만 이미 술에 절어 있던 그는 이성을 잃은 듯 고함을 질렀다.

"꺼져! 다 꺼져! 너희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된 거야!"

수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린 딸의 상처 입은 눈동자가 최 씨의 가슴을 후벼 팠다. 아내는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딸의 손을 잡고 현관으로 향했다.
 
 "우리 갈 거예요. 당신과는 더는 함께 살 수 없어요."

"안 돼! 가지 마!"

비틀거리며 일어선 최 씨가 두 사람을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아내는 단호하게 그의 손을 뿌리쳤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묵직하게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술에 취해 어지러운 눈으로 닫힌 문을 바라보는 최 씨. 그는 천천히 주저앉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가족을 지켜내지 못한 자신의 무능함이 한없이 비참하게 느껴졌다.


"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

그의 흐느낌은 점점 더 심해졌다.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아팠다. 자신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처참한 심정이 복받쳐 올랐다. 눈물이 볼을 타고 주륵주륵 흘러내렸다.

텅 빈 집안에는 그의 흐느낌만이 메아리쳤다. 아내와 딸이 남기고 간 빈자리가 공허하게 느껴졌다.

최 씨는 이후로도 술을 끊지 못했다. 오히려 더 깊이 술에 빠져들었다. 빚쟁이들의 발길질에 쫓겨 이곳저곳을 전전했다. 낡은 고시원 방에서 혼자 술을 마시며 나날을 보냈다.
 
 어느 날 최 씨는 거리를 배회하다 우연히 수아를 발견했다. 훌쩍 자란 딸아이는 친구들과 함께 학교 앞을 지나고 있었다. 순간 모든 것이 멈춘 듯 했다. 최 씨는 술에 절은 눈으로 딸의 모습을 좇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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