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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의색 Oct 27. 2024

기침이 옮다.

10편

"선화야, 아빠야. 응, 잘 오고 있지? 지금 어디쯤이니? 그래, 알았다. 아빠가 내려갈게." 전화를 끊은 한 씨가 아내에게 말했다. "애들 다 왔다는데. 주차장에 있다는데 뭘 좀 들고 와야 한다네. 내가 좀 다녀올게 여보." "그래요, 알았어요!" 아내의 얼굴에는 딸 내외를 맞이할 생각에 화색이 돌았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한 씨의 마음에 묘한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다. 아내에겐 내색하지 않았지만, 딸의 목소리에서 평소와는 다른 무언가를 느꼈던 것이다. 무겁고 가라앉은 듯한 어조, 한 씨는 그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설마 무슨 일이라도?'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곧 머릿속에서 지워냈다. "괜한 걱정일 거야, 별일 없겠지." 속으로 되뇌며 한 씨는 불안한 마음을 떨쳐 내려 애썼다.     


"아빠, 여기 있어요." 딸 선화가 트렁크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트렁크를 열더니 안에서 홍삼, 다리 안마기, 베개, 과일 등을 꺼내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많은 양이었다. 선화는 과하게 물건을 사 온 것 같았다. "얘야, 이게 다 뭐니?" 한 씨가 물었다. "엄마 아빠 드릴 거예요. 여기 박스는 당신이 들고요. 이건 제가 들게요. 어서 올라가죠." 선화의 목소리는 좀 전의 전화 속보다 더 힘이 없어 보였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아버지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한 씨는 선화가 친정집에 올 때면 항상 빈손으로 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지나치게 많은 선물, 가라앉은 목소리, 시선을 피하는 눈동자까지. 딸의 모습에서 한 씨는 걱정스러운 기운을 감지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딸을 추궁할 수도 없어 한 씨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묵직해진 마음을 감추며, 한 씨는 딸과 함께 조용히 엘레베이터에 올랐다. 15층, 한 씨의 집을 향해 엘레베이터가 천천히 올라갔다.     


"엄마, 우리 왔어요!" 현관문을 열자마자 선화는 엄마에게 달려가 껴안았다. 그 품에 안기자 엄마의 익숙한 냄새가 났다. "엄마가 한 반찬 냄새, 맛있겠다." 선화는 식탁에 앉으며 말했다. 아내는 절로 잔소리를 한다. "얘, 손부터 씻고 와야지. 쯧쯧, 우리 딸은 언제 크나 그래. 박서방도 씻고 오라고 하고." "네, 알겠어요. 엄마 잔소리는 늘 같네." 선화가 말했다. "아빠도 씻고 오세요. 같이 먹어요." 싱크대로 향하는 선화의 뒷모습은 어딘가 축 쳐져 보였다.   

  

손을 씻고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들은 담소를 나누며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한 씨는 조금 전 느꼈던 불안감이 기우였나 싶었다. 술잔이 오가기 시작하고, 한 씨는 사위와 딸과 함께 술을 기울였다. 그때, 선화가 술잔을 내밀며 말했다. "아빠, 저 오늘 술 좀 많이 마실 거예요. 한 잔만 더 주시겠어요?" 그 말에 사위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이 없었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한 씨가 물었다. "왜 그러니? 무슨 일 있는 거야?" 그의 말에 아내의 얼굴에도 불안한 그림자가 어렸다. 식탁에 어떤 암운이 드리운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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