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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모 Aug 15. 2020

사하라도 널 사랑해

타진과 불에 구운 홉즈


 햇빛을 받아 강한 대비를 이루는 모로코의 만물에서는 사막 언덕도 예외가 아니다. 하루는 영국에서  파키스탄 아이들을 따라 강렬하게 대비  색의 모래 언덕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모래가 얼마나 부드러운지, 늪지대처럼 자꾸 발이 푹푹 빠져 위로 올라가기가 어려웠다. 처음엔  발로 차근차근  올라가다가 뛰듯이도 올라가 보고, 나중엔 네발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급기야 신발과 양말까지 벗고 온몸을 총동원했다. 힘들어 숨을 헉헉거리며 쉬면서도 아이들과 함께  마디씩 주고받으며 올라가니 자꾸 웃음이 나왔다. 해와 가장 가깝다는 생각이 드는  최선의 지점에 멈춰서 드러누웠다. 아이들도  주위에  군데씩 자리를 잡았다. 경사가 높은 언덕에 있었으면서도 부드러운 모래가 아주 푹신한 매트리스라도 되는 듯이 몸을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덕분에 편안히 힘을 빼고 누워있었다.

 사람들은 개미만큼 작게 보였고 언덕 너머로 해가 진 후 남은 강렬한 붉은 빛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분명 같은 하늘인데, 반대편 머리 위로는 어느새 찬란한 별들이 하나둘 떠오르는 게 보였다.


 저녁으로 닭고기 타진과 볶은 , 홉즈 그리고 오렌지를 먹었다. 전날에 먹은 쿠스쿠스도 그렇고 모로코 음식이  입맛에는   맞았다.  익은 감자와 당근 맛도 좋고, 닭고기 육수가 진하게 우러난 자작한 국물에 빵을 적셔 먹으면 든든하게 배를 채우기도 괜찮았다. 이국적인 향의 향신료를 잔뜩 넣은 한국의 갈비찜 같기도 . 타진(tajin) 북아프리카에서 즐겨 먹는 요리인데 양고기나 소고기를 넣어 만들기도 한다. 뿔처럼 솟은 두꺼운 뚜껑을 덮어 든다. 용기 이름 ‘타진에서 따와 음식 이름을 칭하는데까지 쓰인다. 보통 무겁고 단단한 황갈색 자기 릇에 조리한다. 언뜻 뚝배기 같기도  생김새다. 강한 불에서 용기  조리해낸 타진이 테이블 위에 놓여져 뚜껑을 열면 뜨거운 김이  빠져나가는  보인다. 연기가 걷히면 이내 먹음직스러운 스튜 요리가 등장한다.


 밤이 되고는 베르베르 부족의 전통 북의 박자에 맞춰 노래하고 춤을 췄다. 추위를 이겨내기 위한 움직임에 가까운 춤이었지만 그리도 신날 수가 없었다. 열심히 몸을 흔들다가 다시 불 주위에 앉기를 반복했다. 모닥불이 일렁이며 꺼질락 말락 할 때쯤 천막으로 들어가려 몸을 일으켰다. 부드러운 모래 때문에 느린 걸음으로 걸었다. 천막의 모습이 언뜻 보일 때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드넓은 하늘에 끝도 없이 수놓아진 별들이 머리 위에서 반짝거리고 있었다. 수백억 원을 쏟아부어 만든 설치 공간에 들어온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었다. 그야말로 태어나 가장 꿈결 같던 순간이었다. 사막의 고요함과 찬란한 별빛에 취해 혼자만의 적막한 여유를 즐겼다. 고개가 아픈지도 모르고 그렇게 계속 하늘을 보며 걸었다.


 한참 후에 어둠 속에서 터번을 둘러쓴 오마르가 다가왔다. 오마르는 내 이름을 물었고 나는 낮에 바카부가 내게 지어준 베르베르 부족의 이름을 이야기했다. “그래, 너 파티마처럼 보여”라고 오마르는 대답했다. 나는 난생 처음 와본 아프리카도, 사하라 사막도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사하라도 널 사랑해” 오마르의 그 말이 사막의 차가운 공기를 순식간에 포근하게 만들어 주는 듯했다.


 오마르는 별똥별을 보여주겠다며 다시 모닥불 근처로 가자고 했다. 우리는 다시 꺼져가는 모닥불의 불씨를 살렸다. 말수가 적고 무뚝뚝하지만 다정한 핫산은 물담배를 가져왔고 곱슬곱슬한 머리에 쾌활한 아마스는 샴페인을 챙겨 나왔다. 내게 한국의 문화를 물어보며 관심을 보이다가도 알아들을  없는 베르베르의 언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면 나는 하늘을 바라봤다.  번을 반복해도 지루하지 않은 일이었다.


 아이들은 조용한 내게 끊임없이 먹을 것과 술, 그리고 담배를 권했다. 배가 부른지도 모르고 계속 홉즈를 받아먹었다. 홉즈(khobz)는 모로코의 대표적 주식인 빵으로, 밀가루에 이스트와 소금만을 넣고 만들어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둥글넓적한 생김새로 거칠고 뻣뻣해 보이는 표면을 가졌는데, 속은 푹신하고 말랑하다. 이 홉즈를 다른 음식과 곁들여만 먹어봤지 직화로 구워 먹은 적은 처음이었다. 불에 갓구운 홉즈는 따끈하고 바삭했다. 조금 목이 마르려 하면 은밀하게 꺼내온 샴페인을 받아마셨다. 시원하진 않아도 추운 사막에서 따뜻한 빵과 함께 마시기에 적당히 좋은 단맛이었다. 나눠 덮은 두꺼운 담요는 따뜻했고 처음 쳐보는 잼베는 흥겨웠다.


홉즈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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