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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모 Sep 06. 2020

바질 올리브 타프나드 샌드위치

포르투 식도락기 1편

 

 2018년 나의 겨울은 포르투와 함께였다. 그곳에서 지내며 매일 하루 동안의 기록을 글과 그림으로 남기곤 했다. 특히 음식에 대한 기억이 특별했다. 그때의 시간을 다시 한번 회상하며 적어본다.


 여느 때처럼 흐리고 축축한 날씨에 산책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던 날이 있었다. 구름 속에서 해가 나타나는 걸 보고는 바다로 가기로 했다. 늘 그렇듯 나는 서툴게 “올라”라며 인사를 건네고, 루벤은 수줍게 “안녕하세요”라고 한다.


 정성들여 3단 샌드위치를 싸서 사과 2개와 초콜렛 반개, 포트 와인을 담은 페트병을 챙겨 가방에 넣고 나섰다. 밤이 될 때까지 도시를 탐방하는 일이 일과였기 때문에 늘 밖에서 먹을 것을 챙겨야 했고 가장 많이 먹은 게 바로 이 샌드위치였다.

 먼저 식빵 한 장 위에 바질, 잣, 치즈를 섞어 만든 바질 페스토를 듬뿍 얹어 바르고 양상추와 채 썬 양파를 올린다. 그 위에 올리브 타프나드를 또 잔뜩 올리는데 블랙 올리브와 마늘을 잘게 다져 올리브유, 레몬즙에 섞은 것이다. 짭조름한 하몽이나 베이컨을 두 장 정도 올리고 식빵을 덮는다. 다시 토마토 한 개를 썰어 올린 다음 고다 치즈 두 장을 올린다. 마지막으로 바질 페스토를 한 번 더 올려준 후 식빵을 덮으면 완성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보면 식빵 윗면과 밑면이 바질페스토에 젖에 진한 초록색을 띠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덕에 빵은 부드러우면서 촉촉한 식감을 낸다. 바질과 올리브, 치즈가 제각기 강렬한 향을 내면서 양파, 마늘이 알싸한 맛을 더해준다. 토마토 양상추는 이것들을 중화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하몽이 중간중간 쫄깃한 식감을 주기까지 하니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샌드위치의 탄생이다. 강한 맛에는 강한 술이 어울린다고 생각해 포트와인을 병에 따라 담았다.


 포트와인은 한 모금 마시면 양주처럼 목을 뜨겁게 타고 내려가 속이 뜨뜻해지는데, 알콜의 독한 맛과 향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과일의 향긋하고 진한 향과 달콤한 맛만 맴돈다. 포도주 발효 중 브랜디를 첨가하여 만드는데, 아직 발효가 끝나지 않은 포도의 당분이 브랜디를 만나며 분해를 멈추고 도수가 올라가는 것이다. 초롭-하며 조금만 맛봐도 입안이 포트와인의 진한 향으로 가득 차는 게 느껴진다. 도수도 높으니 취하는 것도 시간문제라 가성비마저 좋다.


 준비를 마치고 크리스탈 공원으로 향했다. 알고 보니 공원에서 루벤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도 서쪽 다리가 보이는 돌담 위란다. 오늘 그곳에 앉아 싸 온 사과 하나를 먹기로 한다. 집에서는 거들떠도 안보는게 바깥 공기를 쐬며, 열심히 걷고 난 후에 먹으니 꿀맛이다. 이젠 익숙한 듯 닭과 공작새들을 지나쳐 눈에 익은 길들을 따라 산책했다. 어제 높다란 야자수 밑에 쌓아놓은 돌멩이들이 잘 있는지 확인하고 다시 조심스레 탑을 쌓는다. 바람막이를 하나 걸쳤을 뿐인데 한여름처럼 온몸이 덥고 땀이 났다. 바람도 불지 않은 포르투의 이 어느 날은 참 따뜻했다.

 그림을 그리기도 좋은 날씨였다. 색을 칠할 수 있는 도구가 없으니 펜 선에 집중하게 된다. 나무와 풀숲, 언덕은 세로 선으로, 강줄기와 노을은 가로선으로, 햇빛과 곧이어 하나둘 켜지는 도시의 불빛은 점박이로 그렸다. 강가로 다시 내려 걸어가 지평선이 보이는 바다까지 걸어가 본다. 좁다란 길에 건물 군데군데가 부서지고 이끼가 자라있는  포르토의 좁은 골목은 신비롭고 아름답다.


 열심히 걷지는 않고 적당히 바다가 보이는 곳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었다. 뒤에는 사람들과 차들이 열심히 지나다니는 도로지만 챙겨온 노이즈캔슬링 헤드셋이 분위기를 잡는데 한몫을 했다. 내 옆의 조금 떨어진 길 한자리에 누군가가 앉고, 사람들도 걸음을 멈추고 나와 같은 시선으로 바다를 보는 게 어쩐지 위안이 됐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틈에서 꿋꿋이 내 방식을 지키는 게 이렇게 어렵다. 처음엔 어려운 법이다.

 구름과 춤추듯 보였다 숨기를 반복하는 해를 그렇게 바라봤다. 저물어 황혼의 하늘로 바뀌어 갈 때까지 봤다. 이날은 라디오헤드와 보위의 노래를 한참 들었다. 보위 노래는 마냥 흥겹고 파이팅 넘치는 에너지가 있다고 생각하고 듣곤 했는데 ‘Where are we now’는 날 울리는 1번 곡이다. 갑자기 재생되는 그 노래를 듣고 있자면 먹먹해지다 순식간에 눈물이 터진다.


 바다 위 노을을 실컷 보고 돌아가는 길에 가고 싶던 빈티지 샵을 들렀다. 수집가들이 좋아할 만한 골동품 속에서 우리나라의 하회탈도 발견했다. 셰익스피어 서점에서 쳐보기만 했던 타자기로 이번엔 종이에 쓰는 것까지 해봤다. 친절한 아저씨 덕분에 한 글자 한 글자 쳐서 추억을 담았다. ‘Sieun in Porto’라고.

포트와인을 마셔 취기가 남아있던 덕에 귀걸이를 파는 상인 아주머니와 넉살 좋게 대화도 했다. 이곳 사람들은 내게 시선을 많이 준다. 어떤 도시들은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절대 쳐다보지 않아 뻔뻔하게 돌아다니는 재미가 있었는데 포르투 사람들은 걷기만 해도 쳐다보니 가끔은 조금 부끄럽다. 사람들이 하도 쳐다보니 이날만큼은 더 쳐다보라고 춤을 췄다. 선곡은 오늘 고막 친구가 되어준 보위의 ‘Let’s dance’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길 수밖에 없다. 나가려는 길에 캐럴을 치는 피아니스트 아저씨의 곡이 더 듣고 싶어 자리를 잡고 커다란 맥주를 한 잔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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