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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참나무 예언서

by 여등

굴참나무 예언서


하수구에 얼굴 묻은 사연일랑 접고

거꾸로 선채 다리를 버둥거리며

상수리 알알이 낳은 세월일랑 접고

번개 크게 내리친 날

허리 꺾인

굴참나무 누워 말씀하셨다

발가락에 걸려있던 모든 풍경이 거꾸러져

죽은 것이 산 것을 잡아먹는 종말에 이르면

사나운 짐승은 도무지 알을 찾지 못하리

새들은 제 가슴털로 만든 둥지를 먹고

하늘로 던진 씨앗은 모두 무덤에서 싹을 틔우리

나무들아

저마다

입술을 묻어 뿌리가 된 사연을

발가락을 하늘로 쳐올린 사연을

낙타처럼 몸 안에 물을 길어 놓고

제 얼굴 제가 밟고 견디던 사연을

그날에 이르러

귀들을 펄럭이며 노래하리

사람들은 통곡하여도

더 이상 나무들의 노래를 듣지 못할지니

세상의 종말이 그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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