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이지 않을 뿐 억울하다. 힘들긴 마찬가지다.
오늘은 모친의 병원 진료로 인해 오전 반차를 썼다. 병원에서 느끼는 감정은 변함없이 건강이 최고라는 생각이다. 수많은 환자들 틈에 끼어 접수하고, 진료보고, 검사하고, 예약하고, 수납하느라 진이 다 빠졌다. 어머니를 모셔다 드리고 서둘러 집으로 오는 길에 길가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풀을 보고선 차를 멈췄다.
아직도 갈대와 억새의 구분이 쉽게 가지 않지만, 습지에서 자라면 갈대, 산 능선에서 보이면 억새라는 글을 본 것이 어렴풋이 기억에 남았다. 그럼 녀석은 억새풀일 것이다.올 들어 최고로 추운 날씨 속에서 억새풀 찍어 보겠다고 폰카메라를 들이대는데 좀처럼 초점 맞추기가 힘들었다. 마치 찍지 말라는 듯 바람에 흐느끼고 있었고, 그 앞에서 기어코 찍어보겠다고 셔터를 연신 눌렀다.
"녀석 참 억새군!"
차가운 바람에 억장
어깨가 짓눌려 억울
외롭고 강인한 억압
음산한 기운에 억제
춤추는 모습이 억지
음소거 속삭임 억측
꺽이지 않을뿐 억울
뿌리로 버티는 억새
나는 차가운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풀이다. 찬바람이 불어오면, 내 몸은 억장처럼 무겁게 느껴진다. 어깨가 짓눌려 억척같이 버틴다. 든다. 주변의 음산한 기운은 나를 억압하지만, 외롭고 강인한 내 의지로 억제하며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비록 나의 존재가 잊힐까 두렵다. 주위 친구들의 소리 없는 속삭임이 내 귀를 스치고 지나간다. 이 겨울이 뭐가 좋아 춤추냐며 억지부린다. 그들은 나를 보지 않고, 나에 대한 억측만 늘어놓는다. 나는 꺾이지 않을 뿐 억울하다. 힘들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 뿌리는 깊이 박혀 있어, 어떤 폭풍이 불어도 굳건히 버티며 나의 자리를 지킨다.
나는 차가운 겨울 속에서도 춤추는 모습으로 나를 이어간다.
"내 이름은 억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