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이주 5일 차의 해가 떴습니다! 내 인생에 대만에서 살 날이 오다니... 우리나라에서 2시간 30분이면 비행기를 타고 도착하고, 대학교 때 가장 처음 사귄 외국인 친구의 나라,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처음으로 엄마와 함께 해외여행을 갔던 나라. 우리나라와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잠시 스쳐 지나가듯 내 삶에 들어왔던 나라지만, 한 번도 내가 대만에서 살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올 해 봄 여름은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에서 보내게 됐다. 그것도 자의에 의한 타의에 의해서 말이다!
한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 닭갈비
대만 이주 결정은 작년 가을 꽤나 급하게 이뤄졌다. 그것도 내 인생에 나타날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던 영국인 남편 때문에! 아니 덕분에? 북한 및 한반도 전문가인 남편은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 전문가로 커리어를 키우는 것이 목표다. 어학당, 석사, 취업까지 약 10여 년의 한국 생활과, 한국어 능력시험인 TOPIK에서 가장 높은 등급인 6급에 빛나는 실력을 갖춘 남편(이 성적은 남편의 목숨보다 소중한 자존심과 자부심이다!). 그런 남편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닭갈비와 코리안 바비큐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배신하고, 중화권에서 중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말한 건 결혼식을 올린 지 한 달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한국에 이제 터를 좀 잡나 했는데, 세계를 제패했던 영국인의 피가 남편에게도 흐르는 것일까... 요즘의 영국은 지는 나라라고들 하지만, 이 영국인의 피에는 세계의 떠오르는 강호 아시아를 제패하고 싶은 피가 강하게 흐르고 있는 게 분명하다.
장제스 동상 앞에서 행복한 영국인
내 영국인 남편은 우리나라 그 누구보다도 북한 및 한반도에 관심이 많다. 북한 사람들의 인권,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치, 세계사, 안보 등 평생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나보다도 우리나라를 둘러싼 정세를 꿰뚫고 있다. 북한 사람들을 돕고 그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일념 하나에 스물둘 영국에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아시아의 한국에 왔으니 말 다했다. 그것도 가장 북한과 가까운 나라라는 이유만으로. 나 포함 주변 친구들은 북한이 미사일을 쏘거나 한반도 정세가 불안해 보일 때면 남편에게 가장 먼저 의견을 묻기도 한다. 그런 그에게 우리나라와 가장 지리적으로 가까우면서도 역사, 문화, 정치적으로 현대까지 얽히고설킨 중국에 대한 관심은 당연한 것이었다.
집에서 중국어 공부하는 남편
남편은 회사를 다니면서도 출근 전 아침, 때로는 출근 후 저녁 1주일에 세 번씩 종로에 위치한 중국어 학원에서 한국어로 중국어를 배웠다. 그러더니 열심히 공부해 HSK 3급까지 땄다. 영국인이 한국에서 한국어로 된 중국어 교재로 중국어를 공부하는 것도 참 대단하다 생각했는데, 언어는 자고로 그 언어를 모국어로 쓰는 환경에 가서 배워야 듣기, 읽기, 쓰기를 비롯해 특히 말하기가 빨리 는단다.
"한국에 오기 전에 나는 유튜브 보면서 혼자 한국어를 배웠는데, 한국에서 연세 어학당을 다니는 1년 동안 정말 실력이 많이 늘었어! 그래서 중국어도 어학당에 가서 배우면 더 빨리 늘 거야!"
그의 눈에서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아시아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언어에 대한 열정을 막을 길은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는 어느새 자신이 회사를 그만두고 커리어 갭을 가지는 동안 중국어를 공부하고 싶은 어학당도 이미 리서치를 다 끝낸 상태였다. 그렇게 좁혀진 후보지는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와, 중국 본토의 베이징과 상해. 각 학교의 학비와 생활비뿐만 아니라 연고가 없는 외국인으로서 살기 좋은 환경을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우리의 결정은 대만이었다.
타이페이의 홍대 같은 시먼딩
대만의 중국어는 대륙에서 쓰는 중국어와 비슷하지만, 번체자(한자)를 쓴다는 차이점이 있다. 때문에 한국에서 간체자로 중국어를 배운 남편은 새롭게 번체를 배워야 하는 도전에 직면했지만, 주변 친구들과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번체자를 배우고 간체자를 배우는 것이 그 반대로 중국어를 배우는 것보다 더 수월하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만이 중국보다 훨~씬 외국인들이 살기 편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중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은 표현의 자유 및 전반적인 생활에 중국 정권의 통제가 여전히 심하다고 했다. 그렇게 꽤나 급하게 시작된 대만 이주 작전!
남편과 나는 작년 말 일을 그만두고 여행용 가방 3개만 들고 대만으로 떠났다. 그리고 작은 원룸에서 결혼 6개월 차 우리의 신혼 살림을 꾸리기 시작했다.
가깝지만 언어도, 음식도, 생활환경도, 사람들의 가치관도 많이 다른 새로운 나라. 영국인 한국인 이 두 명의 이방인의 대만 적응기, 그리고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방방곡곡 대만의 모습을 독자분들과 함께 나눠가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