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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경계에서

by 꽃하늘

봄, 여름, 가을, 겨울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기억나는 부분이 있다.

“우리나라 기후의 특성은 이 뚜렷하다.”

이 문장이 나왔던 대목이었다.


그때 나는 의문을 품었다.

이 뚜렷한 게 왜 특징이 되는 걸까?

아마도 의 경계가 분명했기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게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태어나 자라던 그 시절,

이면 냉이가 올라왔다.

겨울의 찬 공기가 쉽게 떠나지 못해 아직 쌀쌀했지만, 그때 엄마는 냉이 나물을 해주셨다.

냉이 다음에는 달래와 쑥이 차례로 올라왔다.

달래가 조금 더 먼저 얼굴을 내밀고, 기온이 올라 따뜻해지면 쑥이 뒤따랐다.

(쑥버무리는 아무리 유명한 떡집에서 사 먹어도 엄마가 해주신 그 맛을 찾기 어렵다.)

그리고 따뜻한 공기가 제법 강해질 무렵에는 고사리가 올라왔다.

나물 철은 교과서가 아니라 엄마의 밥상에서 배웠다.


진달래가 지고 철쭉이 진분홍으로 만개할 때,

아카시아꽃 향기가 퍼지며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아카시아 향기는 직접 맡아보지 않으면 모른다.

정말 말로는 다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진하고 향기롭다.


여름은 그렇게 시작됐다.

장마가 지나면 매미가 울었고,

햇볕은 뜨거웠지만 나무 그늘 밑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시냇물은 맑고 차가워 발을 담그면 더위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여름 끝자락에는 메뚜기 떼가 들판을 가득 메우며 뛰어다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잠자리들이 논 위를 무리 지어 날고 매미가 더 크게,

더 자주 우는 것처럼 느껴지면 가을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아침저녁의 공기는 달라지고,

햇볕은 여전히 따가웠지만

습기 없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

그것은 분명 가을의 신호였다.


들깨 수확이 끝나갈 무렵, 아침저녁으로 찬 기운이 짙어지고 서리가 내렸다.

들깨 타작이 끝난 뒤 깨대가 바싹 마른 모습을 보면

‘아, 겨울이 오는구나’ 하고 생각하곤 했다.

며칠 지나 첫눈이 내리면 소원을 빌었다.

봉숭아 물든 손톱을 지켜내려 얼마나 애썼는지 모른다.

소원이 많았던 어린 나였기에.


그렇게 겨울 내내 눈밭을 뒹굴며 썰매를 탔고,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도 했다.


나는 이 뚜렷한 그 장면들을 지금의 아이들에게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못내 미안하다.

의 경계가 흐려지는 요즘,

그제야 ‘이 뚜렷하다’는 말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깨닫는다.


그래도 아직은 있다.

을 알리는 꽃과 풀들,

여름의 초록 가득한 여름빛,

가을의 무르익은 들판과 선선한 바람,

겨울의 하얀 풍경이.

이 소중함을 잊지 않고,

자연을 아끼며 사이좋게 지내려 노력해야겠다.


사계절이 뚜렷하던 날들의 기억을 사진에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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