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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 Dec 03. 2021

마흔, 시간을 지배하는 자

마흔의 문 앞에 선 사람들에게 “가장 후회하는 것은?”하고 묻는다면 뭘 가장 후회할까? 나에게 했던 수많은 질문들 중 가장 하고 싶지 않은 질문이었고 가장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기도 했다. 꺼내야 하지만 꺼내지 못하고 주저주저하던 질문에 대한 답은 시간을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낸 것이다. 시간을 죽이려 영화를 보고, 시간을 보내려 책을 읽고, 시간을 때우러 산책을 했다. 시간은 유한한 것임을 알지만 느끼지 못했던 나는 언제나 시간이 부족하다며 허둥대면서도 시간을 제대로 살지 못했다. 늘 시간에 쫓기며 시간을 관리하기는커녕 끌려다니기 바빴다. 오늘 먹어야 할 세끼는 잘도 챙겨 먹고,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떨고 노는 것은 미루지 않으면서 그날 해야 할 일은 왜 그렇게 내일로 미뤘는지 모르겠다. 하루만 지나도 잊어버릴 것들을 생각하느라 소중한 시간을 쓰고, 게으름과 무기력함에 시간을 흘려보냈다.

 

 

소심하게 흘려보내기엔 너무 아까운 시간. 사회적 편견에 조심하고  조심하느라 흘려보낸 모든 시간들이 후회되고 아깝고 화가 난다. 내가 여자라는 이유로, 내가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아이가 있다는 이유로, 지금 내가 처한 환경과 처지 때문에, 나이가 많아서,  부족하게 여기는  인내심 때문에 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니 시간이 아까웠다. 마흔의 문턱에 우두커니 서서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니 시간을 함부로 사용한 것이 가장 후회되었다. 온갖 이유를 들어 주저하고 걱정하고 망설였던 모든 시간들이 억울했다. 내가  선택이었으니 누굴 탓할 수도 없다.  그렇게 망설이고 주저했을까? 그냥 해도 됐을 텐데.  그렇게 망설이고 주저했을까? 그냥 해도 아무  없었을 텐데. 아무 문제없었을 텐데. 세상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갇혀  그렇게 조심조심 살았을까?

 

 

마흔의 문 앞에 서서 삶의 자세를 가다듬는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뒤집을 순 없겠지만 용기를 내 본다. 더 행복한 나를 위해, 내가 더 행복해져야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가족들을 위해, 나의 행복으로 세상이 조금은 더 밝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제는 나의 가치를 고집스럽게 지켜내기 위한 용기를 낸다.

 

삶의 중간쯤에 서면 지나간 시간의 허무함과 아쉬움도 알고 다가올 시간의 유한함과 불안함    있다. 선택해 살아온 지난날을 아무리 후회한다고 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고 앞으로의 일을 아무리 걱정한다고 해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죽어버린 과거는 대로 묻어두고, 살아보지도 않은 미래는 믿지 않는  좋다. 지금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지금   있는 것을 해야 한다. 마흔, 유한한 삶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렇게 많이 남아있지 않음을 말해준다. 그래서 불안하고 두렵지만 그러므로 삶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있다.

 

 

여기 머물면 여가가 현재가 돼요.

그럼 도 다른 시대를 동경하겠죠.

상상 속의 황금시대.

현재란 그런 거예요. 늘 불만스럽죠.

삶이 원래 그런 거니까.

<미드나잇 인 파리>

 

삶이란 원래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현재를 살며 과거에 머물기도 하고 다른 삶을 꿈꾸기도 한다. 현재의 삶이 아닌 다른 삶이길 꿈꾼다. 하지만 막상 그 삶을 산다고 해도 우린 또 다른 삶을 꿈꾸며 불만을 토로하겠지. 삶은 원래 그런 거니까. 마흔, 원래 그런 것들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내 삶을 원래 그런 것으로 치부해 버리고 불만스럽게 살고 싶지는 않다. 나는 내 인생을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운 인생으로 살고 싶다. 내 삶이 장밋빛으로 빛나지는 않아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 삶의 중간쯤에 선 마흔, 바라는 것은 내가 가는 길이 만족스럽지 않고 자랑스럽지 않은 길이란 것을 알았을 때 포기하지 않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내 삶이 더 의미 있고 가치 있을 수 있다면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고 늦었음을 걱정하지 않고 용기 내어 오늘을 사는 것이다.

 

 

마흔, 처음 운전할 때 운전대를 잡았던 두려움과 설렘을 기억한다. 내가 차를 운전해서 목적지까지 운전할 때의 뿌듯함을 기억한다. 지금까지 나는 내 삶의 운전대를 잡고만 있었다.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딘지 목적지를 잊기도 했다. 목적지를 잃은 삶은 어디를 향할지 몰라 당황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어떻게 살아온 인생인가? 이대로 포기한다고? 그럴 순 없지. 시간들을 제대로 아끼며 살지 못한 순간들이 후회도 되지만 삶을 사는데 너무 느린 것도 그렇다고 너무 빠른 것도 없는 것 같다. 그걸 안 순간부터 그렇게 살기 위해 또 애쓰며 살면 된다. 삶을 사는데 시간제한은 없으니까. ‘그때 왜 그랬을까?’ 하지 않은 것들을 후회할 시간에 지금을 더 충실히 살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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