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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언 Nov 16. 2022

태룡 아니 태용씨가 7월 아니 3월에 태어났다.

  태용씨는 타협하지 않는 정직한 목수였던 이소봉 씨와 생활력이 강했던 동네 반장 조점연씨의 아들로 1954년 3월, 춘분이 막 지난 화요일에 태어났습니다. 숫자로만 느껴졌던 태용씨가 태어난 날을 상상해 봅니다. 태용씨는 내가 처음보았을 때 부터 어른이었기 때문에 신생아 시절을 떠올리는 것은 어쩐지 어색해집니다. 이제 막 봄이 움트려고 하는 3월, 그렇게 소봉씨와 점연씨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태용씨의 주민등록 상 생일은 1954년 7월입니다. 어째서 4개월이나 차이가 나는 것인지 묻자 생소한 단어가 답으로 돌아옵니다.


 "그때가 '전쟁' 직후여 가지고... "


  태용씨가 베이비부머 세대라는 것이 다시 한번 느껴졌어요. 약간의 세대 거리감도 함께요. 어쨌든 당시에는 신고인이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있지 않는 한 신고하는 날이 생일로 등록되었다고 합니다. 태용씨의 출생신고를 1954년 여름에야 한 것을 알 수 있네요.


  태용씨의 가족들은 '진짜' 생일을 요리조리 조합해서 각종 비번으로 쓰고 있지요. 아무래도 보안성이 높으니까요. 어쩐지 우리만 알고 있는 숫자를, 세상에는 기록되지 않은 태용씨의 생일을 비밀리에 공유한다는 기분도 들고요.


  태용씨는 생일뿐 아니라 호적상 이름, 호명하는 이름, 족보상 이름이 모두 다릅니다. 우선 호적에는 이태'룡'으로 되어있고 부를 땐 보통 이태'용'으로 부르죠. 용 용자를 이름으로 쓰는 사람의 태생적 혼란이라고 나 할까요. 태용씨는 공식적으로 태룡으로 다정하게는 태용으로 불리며 살게 됩니다. 그의 이름은 태용씨의 아버지 소봉 씨가 지어주셨습니다. 그 시절 작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족보'와 '항렬'이었죠. 다만 소봉씨는 태용씨의 이름을 지을 때 항렬을 착각하셨지요. '이병○'으로 지어야 할 아들 이름을 '이○용'으로 지어버렸다지 뭡니까. 어쩔 수 없이 족보에는 '병용 (태용)'로 등재되어 있다지요.


  병용이자 태룡이자 태용으로 살아온 그의 화법에는 특이점이 있습니다. 당신만의 이야기를 할 때도 늘 주어가 '우리' 거든요. 예컨대 "우리는 피자그튼거 안 좋아한다."라고 말한다면 태용씨 본인이 피자를 싫어한다는 뜻입니다. 일명 태용어라고나 할까요. 내가 왜 굳이 '우리'라고 하냐고 따지면 태용씨는 '태용이랑 태룡이랑 때롱'을 뜻하는 것이라며 허허 웃어 보입니다.


"우리는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썽질이 풀린다."

"응 아빠가 그렇다는거지? 오키~"


빛바랜 사진 속, 아빠는 맨 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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