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소개한 것과 같이 태용씨의 직업은건축사입니다. 그래서 태용씨가 살았던 '집'들에 대한 기억을 들어보는 것은 흥미로울 것 같았어요. "아빠는 어릴 때 어떤 집에 살았는데?"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내가 묻습니다.
태용씨네집은 일본식 도단집(기와 형식의 양철지붕 집)이었습니다. 앞마당의 우물도 태용씨네 소유였다고 하니 나름 규모 있고 근사한 집이었겠죠? 이 도단집에서는 태용씨의 고모와의 추억이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고모가 태용씨의 손톱을 잘라주시다 피가 나자 줄행랑친 기억, 저녁에 전기가 들어오면 "고모야, 전기 들어왔다, 밥 묵자!"라고 소리치던 기억을 꺼내어 봅니다. 부족함 없이 사랑받고 자랐을 어린 시절의 태용씨가, 그 도단집에 있었겠지요.
태용씨가 예닐곱살 즈음, 그 집을 팔고 근처에 집을 지어서 이사하게 됩니다. 새 집은 소봉씨가 1여 년간 직접 목조 공사를 하고, 울산에서 공수한 슬레이트로 만든 집이었다고 해요. 애석하게도 새 집에서 기억은 조금 슬픕니다. 새 집에서 동생 민희 씨의 다리가 아프기 시작해서 태용씨의 할머니가 어린 민희 씨를 안고 병원에 다니셨던 것이죠. 할머니는 늘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아이고, 내 죽을 때 민희 아픈 다리 가가야 할낀데.."
할머니의 중얼거림이 기도가 되었던 것일까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민희 씨의 다리는 기적처럼 나았습니다. 우연의 일치일 거예요. 그렇지만 태용씨는 할머니의 지극한 사랑이 동생 민희씨의 다리를 낫게 했다고 믿고 있어요. 소주 한 잔 걸칠 때면 태용씨의 가족들에게 이 에피소드를 설화처럼 이야기 해주곤 하니까요.
"그니까네 느 고모 다리 아픈거 있제? 할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딱 나아뿐는기라."
어린시절 기억을 지배하는 공간적인 배경은 바로 '집'일겁니다. 태용씨의 추억이 집을 배경으로 끄집어내어지는 것은 예상대로 흥미로웠지요. 지금 태용씨는 공간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되었으니까요. 그 슬레이트 집 이후에도 몇번의 이사를 거쳐 지금은 해운대에 자리잡고 살고 있어요. 물론 여기가 마지막집은 아닐겁니다. 태용씨는 직접 집을 설계해서 짓고자 하는 꿈이 있거든요. 자, 태용씨 다음 추억의 배경은 어떤 모습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