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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언 Nov 18. 2022

풍년이 깃들길

  슬픈 단어이긴 한데요, 옛날에는 '반타작'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자식농사'에서 '반타작'이라니 어떤 말인지 감이 오실는지요. 태용씨네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요. 어머니 점연씨는 4남 2녀를 출산했습니다. 그들 중 내가 가족으로 만난 사람은 누나 정자씨, 태용씨, 동생 민희씨 이렇게 세 사람뿐이죠.


  막냇동생 덕용 씨의 죽음에 대해 자세히 알게된 건 처음이었고 또 슬펐습니다. 예닐곱 살 즈음의 덕용 씨는 동네에서 개에 물린 후 몇 개월 뒤 죽었습니다. 광견병이었지 않나 싶습니다. 막냇동생은 따로 장례 없이 작은아버지께서 짜온 아이관에 담겨 뒷산에 묻혔습니다. 아이가 죽으면 흙 봉분이 아니라 돌무덤을 만들었지요. 어머니 점연씨는 1년을 하루같이 아들 덕용 씨가 묻힌 산에 가서 울었습니다.


  예전에 들었다면 아마도 '아~그런 일이 있었구나.' 했을 겁니다. 하지만 어느새 나도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다르더군요. 할 수만 있다면 돌무더기를 제자식처럼 매만지며 울었을 점연씨를, 우는 어머니 옆을 지켰을 국민학생 태용씨를 위로해 주고 싶었어요.


 덕용씨의 죽음과는 다르게 형 판용씨의 죽음에 대해서는 몇차례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판용씨는 병치레 한번 없이 건강했어요. 어느 날, 감기몸살로 입원 후 일주일만에 폐렴과 패혈증으로 번졌습니다. 급히 부산대병원으로 전원한 날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른 셋. 지금의 나보다 어렸고 크리스마스이브였습니다. 운명은 참 짓궂지요. 동생을  '이기사'라고 부르며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했던 형 판용씨였기 태용씨에게 크나큰 충격이었습니다. 형제끼리 합심해서 해보고자 하던 건축일도 있었고요. 아름다워야 할 크리스마스이브에 형제의 청사진이 그렇게 소멸해버립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의 죽음은 나에게는그저 하나의 '팩트'였습니다. '아, 내가 뵌 적 없는 아빠의 형은 일찍 돌아가셨구나.' 이렇게요. 명절때 마다 묻혀계신 실로암공동묘원에 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태용씨께 질문하고 대답을 듣는 과정에서 조금이나마 짐작하게 되었습니다. 형 판용씨가 태용씨에게 어떤 의미였을지를요. 말로써 글로써 구체화되고 입체감과 생기마저 띈 형 판용씨가 이 글 속에 있으니까요.


  나에겐 오빠가 한 명 있습니다. 태용씨의 마음을 짐작해보기 위해 오빠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상상해보았는데요. 정상적으로 상상 회로가 작동하지 않더라고요. 오빠와 애틋한 남매 관계여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닙니다. 서로를 향한 다정함보다는 투덜거림이 편한 흔해빠진 '찐남매'거든요. 아마 서로를 생각하지 않는 날이 훨씬 더 많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오빠가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전제하에 그렇단 거예요. 내 유년시절의 많은 기억이 맞대어져 있는 사람과의 갑작스럽고 이른 이별은 결코 상상하고 싶지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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