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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언 Nov 17. 2022

나의 살던 고향은 벚꽃피는 탑산골

  어느덧 봄입니다. 어김없이 <벚꽃엔딩>이 차트 역주행을 시작했고 벚꽃은 한반도 꼬리쯤에서부터 연분홍빛으로 스미듯 번지고 있죠. 벚꽃의 도시, 진해가 바로 태용씨의 고향입니다. 그중에서도 벚꽃 성지인 탑산 근처의 인사동에서 태어났지요. 근처의 로터리와 탑산과 365계단에서 어린 시절 놀았던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당시의 놀이라곤 술래잡기를 하거나 편을 갈라 싸움을 하는 정도(?) 였다고 하는데, 꽤나 '별난 편'이었던 태용씨는 '윗동네 대표로 싸움'도 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죠. 태용씨는 아버지 소봉씨의 성격을 물려받아 내향적인 편입니다. 나의 기억에도 태용씨는 (술이 없다는 전제 하에) 누군가와 먼저 친해지거나 나서는 성격은 아닙니다. 그런 태용씨가 '별난 데다 동네 대표로 쌈질'을 했다니 뭔가 어긋난 느낌입니다. 그렇다면 태용씨는 싸움을 어린이판 종합격투기 같은, 이를테면 스포츠로 여겼던 건 아닐까요? 아니면 내향적인 성격을 보완하기 위한 방어기제였을지도 모르고요.


   아참, 형 판용씨에게 싸움의 기술도 전수받았다는데요. 그 기술은 바로 '절대 울지 말 것'이었습니다. 물리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절대 져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또 '갈비'라고 불렸던 누렇게 마른 솔잎을 땔감으로 가져오는 것도 하나의 '놀이'였대요. 화력도 좋고 오래오래 타는 갈비는 아주 훌륭한 땔감이었습니다. 당시엔 탑산이 거의 민둥산이었기 때문에 누나 정자 씨와 산을 넘어 해군기지로 몰래 숨어들어 갈비를 구해오기도 했고요.  마른 솔잎을 갈고리로 긁어모아 가져 가면 어머니 점연씨가 좋아하셨지요. 어머니 점연씨의 칭찬과 미소는 어린 태용씨로 하여금 또다시 땔감 놀이를 하러 가게끔 하는 '땔감'이 되었을 겁니다.


  뒷산을 놀이터 삼아 몸으로 부대끼며 자란 태용씨네 형제자매는 모두 운동을 잘했죠. 형 판용 씨는 배구로, 누나 정자 씨는 정구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태용씨도 지지 않습니다. 물론 형이나 누나보다는 못했다고 하지만 운동을 즐기는 스타일이었지요. 핸드볼, 축구, 농구, 배구 같은 구기종목도 잘했고, 특히 마라톤에 자신 있었다고 해요. 특유의 끈기와 지구력으로 끝끝내 결승선에 다다랐겠지요. 시대와 운을 더 타고 났다더라면 네이버 검색에 나오는 선수가족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태용씨 어린 시절의 진해 탑산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잠시 상상해 봅니다. 지금은 벚꽃 명소로 관광지가 된 그 동네에서 태용씨는 술래잡기를 하고, 놀이 삼아 쌈박질을 하고, 갈비를 긁어모았겠지요. 예순 번이 넘는 피고 짐을 겪었을 60여 년 전의 벚꽃은 지금보다 더 붉었을까요 희었을까요.


마라톤 중인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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