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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언 Nov 27. 2022

인생은 짧지만 부침을 겪을 만큼은 길다.

  결혼과 동시에 임신이라는 축복이 그들에게 찾아왔지요. 82년 11월 아들 재기씨를 출산합니다. 집안의 첫 손주였고, 장남이었기에 온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지요. 결혼과 출산이라는 큰 과제들을 해낸 태용씨. 그렇게 오래오래 평범하고 행복하기만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지만 인생이란게 그렇게 호락호락하던가요. 잔잔한 호수같은 태용씨의 삶에도 집채만한 부침이 파도같이 몰려옵니다. 아들 재기씨가 태어나고 한달이 지났을 무렵, 형 판용씨가 세상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건강하던 형님과 너무나 이르게 이별해야 했던 태용씨는 깊은 슬럼프를 겪게 됩니다.


  의지할 곳이 필요했습니다. 무기력과 술은 정답이 아니였기 때문입니다. 때마침 태용씨가 맡은 업무가 수녀원을 짓는 프로젝트였습니다. 또 마침 설계사무소 소장님도 카톨릭 신자였고요. 수녀님들이 사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성당이라면 가도 좋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비슷한 시기에 어머니 점연씨도 천주교를 접하게 되지요. 그렇게 슬픈연유로  종교생활이 시작됩니다. 차마 그 마음을 가늠할 순 없지만요, 아들 판용씨를 잃은 점연씨에게도 분명히 필요했을겁니다. 신이요. 신이라는게 있다면요.


  신도 무심하시지요. 몇해 후, 어머니 점연씨도 뇌출혈로 쓰러지게 됩니다. 그렇게 몇번의 응급상황을 거칩니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이 몇번이나 있었을까요. 점연씨는 그 후로 15년이 넘는 세월을 와병생활을 합니다. 잠시 필자가 아닌 딸로서 나는, 태용씨에게 꼭 이 말을 전해주고 싶어요.


'Bad things at times do happen to good people.'

(때때로 불행한 일이 좋은 사람들에게도 일어나요.)


  힘든 시기를 회상하며 마지막으로 태용씨가 언급한 건 아내 경애씨였어요. 경애씨는 결혼과 동시에 아이를 갖고 낳았습니다. 갑작스런 시숙의 죽음으로 별안간 맏며느리가 되었고요. 이후로 시어머니 점연씨의 병수발을, 생애 마지막에는 대소변수발까지 들어야 했습니다. 운명에 떠밀려 본의 아닌 삶을 살아온 아내 경애씨는 어쩌면 태용씨 삶에 큰 부채감으로 남아있을지도 모릅니다.


"너거 엄마가 가장 고생했을꺼라."


아빠 그리고 엄마


이전 12화 태용씨, 경애씨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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