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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언 Nov 25. 2022

스테파노? 술테파노!

  확언하건데 술은 태용씨 생애주기를 함께한 친구입니다. 안주가 됨직한 음식을 앞에두고 소주를 주문할때면 영락없는 '소년의 얼굴'이 되어버리곤 합니다. '술'과 '소년의 얼굴'이라니, 언뜻 범법적으로 들리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닙니다. 그의 음주인생은 '미자시절'에 시작되었으니까요. 열일곱, 부산공전에 입학한 태용씨는 고등학생도 대학생도 아닌 채로 술을 접하게 됩니다. 태용씨의 인생 첫 술은 바로 막걸리! (나도!) 술자리의 이유는 학교 행사! (나도! 역시 피는 못속임) 였습니다. 술도 담배도 실은 처음이었지만 짐짓 잘하는 '척'을 했던 열일곱의 '허세태용'의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빵 터지고 말았지요.


  부산공전, 다같이 돈없던 시절이라 친구들이랑 짠내나는 술자리가 많았습니다. 친구 자취방에 모여 앉아 가장 싼 소주댓병을 사다가 마셨습니다. 안주로다 갈치 한마리에 물을 가득 넣고 끓여 양을 불려 먹기도 했지요.두세달동안 술은 입에도 못댈만큼 만취하기도 하고, 집에 도저히 갈 수 없어 이모집에 신세를 지기도 하고, 집에 온 기억을 잃어버리며 블랙아웃도 겪습니다. 그렇게 태용씨의 음주력은 나날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죠.

  술 얘기 하다가 갑자기 신성해 지는 것 같긴한데요, 태용씨의 세례명은 스테파노입니다. 태용씨의 가족은 모두 천주교거든요. 성당에서의 태용씨는 스테파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술'테파노이기도 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이 별명이 많은 것을 방증하지요.


  몇 해전 주말, 부산 본가에 들렀는데 의뭉스러운 항아리 하나가 있었어요. 심지어 무릎담요에 곱게 덮혀있었습니다. 뭐냐고 묻자 '탁주'라고 하시더군요. 세상에, 드디어 태용씨는 술을 담기 시작한 것입니다. 옛날에는 집에서 술을 빚는 게 불법이었기에 밀주였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으니까. 옛날에 시골 이모가 몰래 담아 가져온 술맛이 기억나 추억삼아 담으신 술이래요. 이정도면, 진정한 '술덕' 아닐까요.


  술에 대한 질문에는 유독 진지하고 긴 답변으로 인터뷰에 응해 주신 태용씨. 태용씨의 말 중 압권은 바로 이 대답이 되겠습니다.


"술이, 몸에 좋은건, 아니고, 그렇지 만은, 지금도 하고있어!!"


숙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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