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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언 Nov 24. 2022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태용씨편

“서울로 수학여행 다녀간 다음해인가? 김신조가 북에서 넘어왔을 때지 싶다.”


꼬꼬무에서만 듣던 간첩 김신조의 이름의 별안간 태용씨 인터뷰에서 튀어 나옵니다. 태용씨는 60여년 근대사의 시간들을 살며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들을 소시민으로서 겪어왔을 겁니다. 어느새 5월이 되고, 티비에서는 5.18 민주화 항쟁에 대한 다큐멘터리, 시사프로, 뉴스가 방송되고 있어요. 소시민 태용씨가 겪었던 격동의 시대는 어땠을지 궁금해졌습니다.


70년 후반 컬러텔레비전이 보급되기 전이라 태용씨의 집에는 흑백 텔레비전이 있었습니다. 물론 흑백텔레비전도 흔한 가전은 아니였지요. 10.26 사태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살해되는 사건에서 부터 12.12 사태로 군부가 실권을 장악하고 이후 민주화 운동까지 모두 흑백 텔레비전으로 뉴스를 전해 듣습니다. 아시다시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언론 보도는 모두 검열되었기 때문에 제한적인 정보만을 취할 수 있었는데요, 다만 당시 일본방송을 볼 수 있는 채널이 있었습니다. 그 채널에는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적나라한 영상들이 방영되어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티비 밖 태용씨도 당시의 서슬퍼런 군사독재를 간접적으로 경험해야 했지요. 계엄령이 내려진 당시 대한민국에서는, 광주 뿐아니라 전국의 대학교를 공수부대가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그 즈음 학생은 아니었지만 학교를 드나들 일이 생깁니다. 부산수산대학 (현 부경대학교) 의 학생회관을 설계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최종 도면 협의를 위해 학교에 가야할 일이 생길 때면 군인들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방문목적을 밝히는 것은 물론이고 가져온 도면 자료를 모두 공개하고 설명해야 학교로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야말로 개인의 영역이 모두 검열되던 감시의 시대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태용씨가 근무하던 사무실 역시 부산의 집회 장소를 종종 이용되는 곳이었던 지라 사무실 도처에도 공수부대원과 특전사가 상시 투입되어 있었다고 해요. 지나가던 누구라도 말을 붙이면 총으로 위협하고 폭행하는게 일상이었던 폭력과 비이성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민주화 운동의 주역들은 아니었을지라도 지금의 상식으로는 납득될 수 없는 일상들을 버티어 낸 당시의 모든 소시민들에게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겠습니다.


젊은 날의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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