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내가 아빠의 삶에 무관심한 것은 아닐까 했던 반성 비슷한 것에서 시작된 거여서요. 내가 없던, 그리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날들의 아빠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아두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던듯도 합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던 2022년, 약간은 쭈뼛대는 마음으로 질문과 대답을 시작했습니다. 서툰 인터뷰이와 인터뷰어는 빈 여백을 채우기 위해 음성메시지와 문자메시지로 교감했어요. 참 다정한 날들로 기억될 겁니다. 어느 정도 글감이 마련되었다는 생각에 이제 여기까지만 질문하겠다고 하자 태용씨가 이렇게 대답했지요.
심심한데, 더 얘기하고 싶은데.
그 한마디로써 이 글의 목적은 온전히 달성했다고 믿고 싶습니다. 글을 쓰는 전 기간을 통틀어 가장 강렬하고 선명한 성취감의 순간이었지요.
아마 이 서른 꼭지의 조각 글에서 멈추지는 않을 겁니다. 계속되는 삶이니까요. 언제 어느 틈에 다시금 자판을 두드리고 있을지도요. 저 역시 언제까지나 태용씨의 딸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