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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트. 심리학자도 운동인만큼 강하다.

어쩌면 심리학자들이 더 강할 수도.

by writer Lucy

'학자'를 생각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는지. 매체에 으레껏 노출된 모습처럼 '너드', '공부 벌레' 이미지가 강할 것으로 생각된다. 공부에 매진하느라 햇볕을 받지 못해 하얘진 얼굴과 전공 책도 겨우 옮길 법한 팔 근육, 약간 구부정한 자세에 호리호리한 몸매까지. 이 모습은 '학자'에서 '심리학자'로 더 들어가도 별 차이가 없을 것 같다. 이에 비해 근력 운동으로 다져진 울끈불끈한 팔과 탄성 가득한 허벅지, 구릿빛 피부에 우렁찬 기합으로 무장한 운동인은 어떨까. 심리학자들을 단번에 제압하고도 남을 것 같다. 하지만 정신력으로 따진다면? 그래도 운동인이 정말 더 강할까요?


운동을 시작하기 전 나는 주기적으로 잊을새라 등장하는 우울감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심리학 공부를 선택한 적이 있었다. 그전에도 마음 속 한켠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욕구는 존재했는데 마냥 멋져보이기도 하고 인간 심리를 깊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달까. 사회 초년생 시절에는 따로 공부할 수 있는 방법도 모르고 심적 여유도 없어 제껴두다가 유난히 의지가 퐁퐁 솟아오르던 작년 1월, 학점은행제로 심리학 학사를 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바로 수강 신청을 해버렸다. 1년 넘게 회사 생활을 병행하면서 새벽까지 강의를 듣고, 과제를 하면서도 힘든 줄을 몰랐다. '왜 이걸 이제야 공부했지' 싶을 정도로 재밌었고 대학 시절 한번도 하지 않았던 질문도 게시판에 남겨가며 공부에 맛을 들였다.


심리학을 배우면서 재미를 느꼈던 건 우울을 만들어낸 원인들을 상담 받듯 꿰뚫는 내용을 배울 수 있어서였다. 심리학개론 수강 때는 '인간은 본래 편한 것을 추구하기 마련이고 이는 잘못된 것이 아닌 인간의 특성이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게으름에 대한 필요 이상의 죄책감과 자괴감을 덜어낼 수 있었고, 성격심리학 수강 때는 '건강하게 살려면 잘한 것은 내 덕분이고 못한 것은 남탓할 수 있어야한다'는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울었다. 최근에는 상담이론과 기법에 대해 공부하는 '상담이론과 실제'라는 과목을 듣고 있는데 이론을 창시한 학자들의 삶을 배우며 나처럼 우울(혹은 더한 고난)을 겪었지만 극복한 그들의 강인함에 감탄했고 '어쩌면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들은 심리학자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음은 일부 심리학자들의 기구한(!) 삶과 그것을 이겨내고 만든 성취들이다.


(1) 알프레드 아들러

어린 시절 구루병을 앓아 신체적으로 열등함.

4세에 폐렴으로 죽을 뻔했으며 손수레에 치어 두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김.

낮은 수학 성적으로 유급을 했고 공부보다는 일을 하는 것이 낫겠다고 선생님이 제안할 정도.

이 모든 경험을 발판 삼아 '개인심리학적 상담기법'을 창시. 인간은 열등감을 극복하고 우월성으로 향하는 낙관적 존재임을 역설.


(2) 칼 융

유복하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났고 주로 혼자 지내야했음.

아동기 때 꿈의 의미와 초자연적인 환상에 빠져 지내거나, 자신이 만든 인간 형상과 대화를 나누기도 함.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을 이어 분석심리학을 창시. '집단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창조하였으며 현재 가장 핫한 MBTI 테스트의 기초적 개념을 만든 사람이기도 함.


(3) 아론 벡

어린 시절 어머니는 우울증을 겪었고, 골절 사고 후 마취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사가 수술을 진행하여 피 공포증을 얻게 됨.

유급 등을 경험하면서 자신을 무능하고 바보 같다고 생각함.

어려서부터 겪은 자신의 어려움을 인지적으로 해결하기 시작함. 결국 인지주의이론의 선구자가 됨.


(4) 엘리스

미국 피츠버그에서 태어나 고아나 다름없이 자람.

자녀 키울 준비가 전혀 안 된 어머니, 잦은 여행으로 가족을 돌보지 않았던 무책임한 아버지, 무모한 남동생과 푸념쟁이 여동생 사이에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냄.

하지만 비참함을 거부하고 우울증과 불안에 시달리던 여동생도 직접 치료해 냄.

아론 벡과 함께 인지주의이론의 대표 학자로 거론됨.


개인적으로 아론 벡의 일화가 가장 기억에 남았는데, 어린 나이에 자신의 공포증을 극복하기 위해 '인지치료'라는 개념을 생각하고 결국 현대 미국 정신의학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이론을 만들어낸 그의 서사는 거의 히어로 무비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나도 인지치료를 불안이나 우울을 다스리기 위해 자주 활용하는데, 인지주의에서는 정신적 고통을 만들어내는 것이 '무의식적으로 만들어진 비합리적인 신념'이라고 보고 비합리적 사고를 합리적인 것으로 바꿔나가는 것을 치료법으로 권장한다. 만일 내가 '제대로 된 결과를 못 만들었네. 난 대체 잘하는 게 뭐야? 인생 망했어'라는 생각을 하면 재빠르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실을 인식하고 '방금 생각한 건 비합리적인 생각이야. 제대로 안했다고 아예 아무것도 만들지 못한것은 아니고, 이거 하나로 나의 능력을 단정지을 순 없어. 인생 역시 마찬가지야.'라고 생각하는 식이다. 이렇게 생각을 교정하다보면 교정된 생각이 어느새 자동적 사고의 자리를 채워 이성과 상관없이 생떼 쓰는 우울감을 물리칠 수 있다.


비록 심리학자들이 압도적 무게의 무쇠를 이고지고 한 팔로 가뿐히 들긴 어려워보이지만(이것도 과잉일반화에서 온 편견의 일부라는 건 압니다만... 용서 부탁 드립니다) 그 정신력만큼은 운동인 버금가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더 강하지 않을까 싶기도하다. 아니면 심리학과 운동이 각각 만들어내는 근육은 조금 다른 결인지도. 심리학은 '내 문제를 마주할 수 있는 힘'을 주고 '내 문제가 이래서 나는 이게 필요하군, 이걸 시도해봐야겠다'고 진단 및 치료제 역할을 한다면, 운동은 '그럼에도 나는 할 수 있는 사람이고 해내는 사람이다'를 상기시키는 자양강장제 같은 역할을 하니까. 그럼 심리학과 운동을 모두 하고 있는 나는 이 세상에 전례 없는 슈퍼 히어로가 될 수 있을까? 모두 기대하시라, 조만간 개봉박두!


tempImageFu77EW.heic 옛날 옛적 노트에서 발견한 나의 다짐. 지금의 나는 그때와 얼마나 달라졌을까.


Back in the days 11.

공부로 우울감 해소하기

별 다섯 개 만점에 다섯 개, “제일 건전하고 본질에 닿은 방법”

장점: 이제까지 시도한 방법들 중 가장 건전한 방법이다. 나처럼 심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본질적 문제에 많이 다가간다고 봐도 될 것 같고.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공부할 수 있다. 인터넷 강의, 성인용 학습지, 책도 활용할 수 있고 비용이 부담이라면 유튜브로 공부할 수도 있다.

단점: 딱히 없다. 무엇을 공부해야할지 고민이라면 예전부터 본인이 궁금했지만 시도를 미뤄뒀던 것에서 출발해보자. 철학, 인문학, 공학 뭐든 좋다. 세상은 넓고 공부할 건 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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