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 Dec 29. 2023

책이 나에게 준 것들

글 병아리콩

책 한 줄 읽기 힘든 날들이 많았다. 학생일 때는 공부가, 졸업해서는 회사가 우선시 되어 독서는커녕 스스로를 추스르기도 어려웠다. 하루 끝 한두 시간 정도 자투리 시간이 남으면 유튜브나 OTT 영상을 자주 봤다. 이대로 오늘을 끝내기엔 아쉬운데 다른 일을 하기에는 지쳤을 때 좋은 대안이었다. 앉거나 누워서 아무 생각 없이 흘러나오는 영상을 보기만 하면 되니까. 한국인 독서율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느니, 젊은이들의 문해력이 약해지고 있다느니 하는 기사를 보면 콧방귀가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읽을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 그 이유는 들어보지 않고 읽으라고 잔소리하는 느낌이 드니까. 안 읽고도 잘만 사는 이들, 최선을 다해 일상을 지탱하는 이들에게 책을 읽지 못한다는 죄책감을 얹는 게 싫었다.


이러한 생각과는 모순적으로, 나 자신은 늘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마음 한구석에 품고 살았다. ‘아, 책 좀 읽어야 하는데.’ ‘안 읽은 지 너무 오래됐다.’ 하며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하고 읽지도 않은 채 반납일을 맞이한 적도 많았다. 빚이라도 진 사람처럼 부채감을 키웠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나는 하루에도 두세 개씩 독후감을 쓰고 ‘너는 참 책을 좋아하는구나’라는 칭찬을 내심 기다렸던, 반에 한 명씩은 있는 그런 아이였다. 그래서 오랜 친구에게 가끔 안부 연락을 하는 의무감을 느끼듯이, 책을 오랫동안 안 읽으면 불편해진다. 손 놓고 있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돌아와 찾고 읽게 된다. 1년 넘게 한 권도 안 읽다가 일주일에 두세 권씩 읽기도 한다. 그런 나를 보며 마음의 여유나 일상의 번잡한 정도를 진단하기도 한다.


책을 좋아하게 된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가 떠오른다. 하나는 엄마가 책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휴일마다 책을 쟁여놓고 읽었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뭐든 엄마를 따라 하고 싶었던 나는 엄마가 읽던 책을 몰래 찾아 읽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중에는 어린이가 읽기엔 너무 수위가 높은 책도 많았다고 느낀다. 또 다른 이유는 책 읽기 외에 다른 할 일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부모님 모두 직장에 다니셔서 외동이었던 나는 집에 혼자 남거나 친척 집에 자주 머물렀다. 그 집에선 마음대로 TV를 보거나 장난치며 놀기 어려웠다. 엄격한 친척 어르신은 무서운 존재였고, 조용히 책을 읽거나 숙제를 하는 일 외엔 잘 허락되지 않았다. 


근본적으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책을 원하는 만큼 읽을 수 있는 환경에 있었다. 주변 어른들은 굳이 독서를 강요하지 않았고, 권장 도서가 아닌 슈가슈가룬 만화책이나 귀여니 소설을 사고 빌리는 데 용돈을 탕진해도 잔소리하지 않았다. 도서관도 근처에 많았다. 덕분에 처음부터 책 읽기는 즐거운 것이라는 이미지가 박힐 수 있었다. 동시에 책은 좋은 스승이었다. 오랫동안 앉아 집중하는 법, 긴 글을 정확하게 읽는 법,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 책을 매개로 여러 사람도 만났다. 도서부나 독서 모임에서 활동하며 소중한 인연을 많이 맺었다. 책 한 권에도 추억을 쌓는 경험이 반복됐다. 이 책을 추천해 준 사람, 같이 읽었던 사람,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 상황을 책에 담을 수 있었다.


이렇게 쌓아온 추억과 시간은 내가 책과 멀어져도 늘 한편으로 책을 생각하고 결국 다시 집어 들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도서관이나 출판사에서 일하거나 작가가 되기를 꿈꾸기도 했다. 출판사 A사에서 일하게 된 것도,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렇게 글을 남기는 것도 책에 대한 애정 덕분이다. 실시간으로 재정이 악화되는 출판에서 근무하면서, 왜 많은 사람이 책에 돈과 시간을 쓰지 않을까 안타깝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왜 돈이 안 될까, 생각하면 슬펐다. 하지만 책 산업에 종사해 본 나조차도 책 한 줄 읽기 어려우니 당연한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했듯, 나는 책을 읽지 않는 사람에겐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들에게 책을 굳이 읽혀야 할 유인도 느끼지 못한다.


A사를 떠나면서 내가 독서를 좋아하게 된 것은 책 자체보다도 책을 통해 얻은 자산 때문이었다고 느끼게 됐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과의 교류, 차분한 성찰이 좋다. 그 자산을 다른 콘텐츠와 다른 방식으로 실현할 수 있고, 내가 앞으로 그 방식을 택한다고 해서 책을 배신하거나 문해력을 잃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책과 관련된 일을 하든 안 하든, 독서 빈도가 늘든 줄든, 책과의 인연은 어떻게든 계속될 것이고 책이 나에게 준 모든 좋은 것들은 사라지지 않을 테니.

이전 27화 오래 기릴 소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