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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율 Feb 27. 2024

복숭아 밭에서 알로카시아를 캔다고?

 

주말에 친정부모님을 뵈러 갔다. 점심식사를 하고 어머니께서 남편에게 말씀하셨다.

"사위, 밭에 가서 뭣 좀 캐오자고."

"네, 어머니."

어머니와 아버지는 밭에 아주 멋있는 게 있다며 가서 그것 좀 캐오자고 말씀하시는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얼굴표정에 어린아이처럼 설레는 심정이 엿보였다. 나는 캐오자는 건지 궁금하기도 하고 달리 일도 없어서 부모님과 함께 밭을 따라나섰다.


밭에 도착하자 부모님은 어디론가 성큼성큼 걸어가셨다. 밭에는 온갖 작물이 많이 심어져 있었는데 밭의 절반 가량에 과일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다. 그중 부모님께서 멈춰 서신 곳은 다름 아닌 복숭아 밭이었다. 어머니가 손으로 가리키신 곳을 눈으로 따라가 보니 부모님께서 말씀하셨던 "아주 멋있는 게" 보였다.


그 식물은 길이가 어른의 허벅지까지 오고 잎이 아주 크고 멋있는 다름 아닌 "알로카시아"였다.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여러 포기가 한 곳에 심어져 있었다. 집의 거실이나 큰 건물의 로비에 화분 속에 심어져 있어야 어울릴 것 같은 알로카시아가 복숭아 밭의 한편에서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니 뭔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서 웃음도 나왔다. 나는 알로카시아가 왜 여기서 자라고 있냐고 어머니께 여쭤봤더니 사연이 있었다.




사연은 이랬다. 대략 7~8년 정도 전에 부모님 집에서 집들이를 하는데 손님 한 분이 알로카시아 화분을 사 오셨다. 부모님께서는 그 식물이 알로카시아라는 것도 모르셨지만 식물이 크고 멋있어서 좋아하셨다. 알로카시아를 집안 거실에서 잘 키우고 계셨는데 어느 날부터인지 잘 자라지 않고 시들기 시작해서 거실에서 가져와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중간계단에서 키워보셨다. 그렇게 1~2년을 거기서 잘 키워오셨는데 어느 날 보니 알로카시아가 죽어버려서 하는 수 없이 화분을 밭의 한편에 쏟아놓으셨다.


그런 후 수년이 흘렀고 부모님은 쏟아 버리신 그 화분 속 식물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지내셨다. 그러던 어느 날 밭에서 일하시다가 복숭아 밭을 지나가는데 키가 꽤 크고 잎이 널찍한 식물이 몇 개가 있는 것이 보였다. 심지도 않은 못 보던 식물 큰 것이 있어서 놀란 마음에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게 바로 몇 년 전에 쏟아버렸던 그 화분 속 식물이라는 것을 아시고는 더 놀라셨다고 한다.


죽은 줄 알고 버려졌던 알로카시아는 단순히 혼자서 살아남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번식까지 잘해서 한 포기였던 것이 4 포기가 되었고 큰 4 포기 옆에 작은 새끼 한 포기도 크고 있었다. 부모님은 알로카시아가 살아나서 번식까지 한 것이 기특하게 느껴지시고 어찌나 반갑게 여기셨던지 밭에서 캐와서 다시 화분에 심고 싶어 하신 것이다.



밭에서 캐오고 싶어 하셨던 식물이 알로카시아라는 것을 알고 알로카시아가 밭에서 자라고 있는 사연까지 듣게 되니 나도 한 포기 얻어와서 키우고 싶었다. 나는 '저도 한 포기 주세요'하고 남편과 열심히 알로카시아를 캐고 있었다. 뿌리가 상하지 않게 하려고 조심조심 호미로 흙을 긁어내고 삽질까지 하면서 마침내 알로카시아를 밭에서 캐내었다. 공들여 캐낸 알로카시아를 뿌리에 흙이 많이 남아있도록 조심조심 차로 옮기면서 나도 모르게 웃으며 마디가 나왔다.


"너는 참 대접받는 식물이구나."


부모님과 함께 밭일을 도울 때면 잡초를 제거하는 일이 제법 많다. 손이나 호미로 뽑기도 하고 낫으로 베기도 하고 제초제를 뿌리기도 한다. 그렇게 해도 비가 한 번 내리면 언제 잡초를 제거했냐는 듯이 흙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잡초들이 다시 올라오는데 그런 무성한 잡초들을 보면 정말이지 힘이 빠질 정도다. 그런데 알로카시아는 잎이 커다랗고 멋있다는 이유로 버려졌는데도 다시 옮겨서 화분에 심어지다니 식물의 입장에서는 알로카시아가 참으로 부러울 것 같았다.


나는 큰 것 하나 작은 새끼 하나를 부모님께 얻어서 가지고 왔다. 집에 오자마자 화분에 옮겨 심어주었는데 며칠 동안은 시들해서 잘 살아날지 걱정을 했지만 이내 줄기와 잎에 힘이 생기더니 뿌리를 잘 내린 것으로 보였다. 한 달 정도가 지나자 새로운 잎도 나오기 시작하고 지금은 화원에서 사 온 식물처럼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다. 지금도 알로카시아를 보면 밭에서 캐오던 때가 기억난다. 다른 잡초에게 살짝 미안한 생각이 들던 것도 어쩔 수 없이 잘 자라는 알로카시아를 보면 뿌듯하기만 하다.


                                                 큰 알로카시아가 성장하는 과정


                                               작은 알로카시아가 성장하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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