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을 지킬 것인가, 가치를 지킬 것인가.
충돌할 일이 없다면 다행이지만,
충돌할 경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일본에 어떤 단체가 있었다.
그 곳은 불법체류자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단체였다.
많은 난민이나 불법체류자들이 그 곳을 찾았다.
비밀이 보장되었고 조건없이 지원받았다.
비록 음지에서지만 큰 인기(?)와 신뢰를 얻고 있었다.
그 신뢰를 이용하여 가짜 불법체류자들이 접근할 수도 있었다.
그들은 불법체류자 행세를 하면서 접근하여
다른 불법체류자들을 신고할 수도 있고
단체가 하는 일을 방해하거나 정부에 신고할 수도 있다.
단체에서도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 위험성이 인지되고 있었다.
단체에 불순한 의도로 접근해오는 이들이 있다면 조직이 위험해지는 것이다.
이럴 때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이제까지 하던대로
불법체류자들이 단체를 찾아오면 조건 없이 지원해줄 것인가?
가짜 불법체류자들이 불순한 의도로 접근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찾아오는 이들을 선별할 것인가?
이 단체는 전자를 택했다.
그래서 예상되었던 위험이 닥쳤다.
가짜 불법체류자들이 접근해 왔고 이들이 정부에 불법체류자들을 신고하였고
많은 불법체류자들이 발각되었고
이들은 일본 정착에 실패했으며
단체의 활동은 크게 위축되어 쪼그라들고 말았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몇 년 뒤 이 단체는 많은 불법체류자들이 믿고 찾아가는 단체가 되었고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규모로 성장하였다.
이 단체가 조직이 일망타진 되는 속에서도,
조직이 위험에 처했을 때 지켰던 것은 '가치'였다.
"우리 단체는 누구라도 위험에 처한 불법체류자들이 찾아오면 정착을 위해 조건 없이 지원한다."
조직이 망하면서도 가치를 지켜내는 모습.
그것을 보고 많은 불법체류자들은 그 단체를 더욱 더 신뢰하게 된 것이다.
그 모습, 그 행위를 보고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된 것이다.
일터의 이사장님이 어느 날 회의를 마치고 식사 자리에서 해 주신 이야기이다.
만약 이 단체가 조직을 지키기 위해
찾아오는 불법체류자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가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일부의 가짜를 가리기 위해 행했던 선별 작업이
진짜 불법체류자들에게도 두려움이 되고 장벽이 되었을 것이다.
더 이상 누구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찾아가는 곳이 아니게 되었을 것이다.
결국 찾아와야 할 불법체류자들이 더 이상 찾지 않았을 것이다.
조직을 지키려다가 조직을 잃었을 것이다.
조직을 지킬 것인가, 가치를 지킬 것인가.
결국 가치를 지키는 것이 조직을 지키는 길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함께 존재해야 생명을 존속시킬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이 우리를 버리고 떠날 때에야,
그것이 뒤돌아서서 사라진 다음에야,
보이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주1)
주1> 제임스 힐먼,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