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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풍 Aug 19. 2022

엄마 밥의 시작) 내 남편은 서른에 암

프롤로그) 힘들고 힘들었는데 한 사람이 남았더라

내 남편은 서른에 암

삶과 죽음 앞에 포기, 선택, 견딤이 있었고
함께 견뎠기에 반려자가 되었고
이 순간의 소중함을 함께 한단다
삶의 반려자는 시간을 견디어 빚는 거였더라


결혼 전 아빠와 데이트하다가 뒤에서 차가 느닷없이 들이닥쳐서 심하게 다친 엄마는 서울에서 혼자 자취생활을 하기가 어려워 다급하게 결혼하게 되었단다.
착한 아빠는 엄마와 헤어지기보다는 함께하는 선택을 한 거야.

몸이 약해진 엄마는 임신을 미루어 결혼 3년 만에 첫아이를 갖게 되었지.

모든 것이 편안하겠다 싶었던 그 시점에 갑자기 아빠의 위암 발병. 그것도 3기. 5년 생존율 10퍼센트라는 기막힌 숫자를 듣고 눈물밖에 나지 않았어.

젊어서 너무 억울했던 아빠는 살기로 결심하고 병원 도서관에서 암에 관한 책을 찾아 읽고 음식, 민간요법, 운동 등 건강 분야의 온갖 지식을 섭렵했지. 병원 복도에서 임신한 아내와 함께 늘 걷기 운동을 하는 젊은 암 환자로 칭찬도 받았지.


살기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건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과 환경을 완전히 바꾸는 거였어.

시골행을 선택했고,

주택에 살기로 했고,

시간이 많은 직업으로 바꾸기로 했다.

서울에서 시골 할아버지 댁으로 이사를 했고,

기업 직원에서 공무원이 되었고,

후다닥 두 달 만에 외할아버지 댁 밭에 집을 지었지.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 아빠는 주택업자가 가져온 어느 연립 주택의 설계 도면으로 아빠의 퇴직금 한도로 집을 줄여 빠르게 살 집을 지었단다.

느닷없는 모든 변화가 너무 힘들었고, 주변에서 딱하게 여기는 것도 싫어서 아무와도 연락하지 않았고, 그저 아빠와 둘이 의지하며 추우나 더우나 산에 오르고 들을 걸으며 건강해 지기만을 바라며 견뎠지.


직업을 바꾸기 위해 아빠는 아픈 중에 혼자 공부했고, 아이는 엄마 혼자 아이를 낳아서 키우다시피 했어. 암 투병 중인 아빠는 그것만으로도 너무 힘들었으니까.

혼자 산부인과에 가서 아이를 낳고, 출근하며 젖을 짜서 퇴근 후에 먹여 키우고 어떻게든 건강식으로 해 먹으려고 매일 밥을 했어.

아빠는 아이를 위해 살아있어 주는 게 최선이었으니까. 엄마, 아빠의 30대에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일들이었단다. 지나가다 하하 호호 웃으며 아기를 데리고 외식하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젊은 부부를 보면 엄마는 눈물이 났단다.


그렇게 지나지 않을 거 같던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더라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어서일까

아빠의 새로운 소원이었던 둘째 아기를 낳게 되고

또 운명처럼 느닷없이 나타난 셋째도 낳는 선택을 했어.

그렇게 우리는 세 딸의 부모가 되었단다.

어느새 텃밭을 가꾸며 주택에서 사는 아주 건강한 가족이 되어 있더라.


아빠가 건강해지니 아빠가 미워지더라.

나의 힘든 30대를 만든 장본인 이어서일까? 

아빠는 스스로 살기 위해 노력했을 뿐인데,

그 곁에서 살림하고 아빠 돌보고 아이 키우고 직장 다녔던 그 세월이 너무 힘겨웠는데, 엄마의 힘겨움을 알아주기는커녕 모든 걸 당연히 여기는 아빠가 미웠어.

아빠가 미우니 하루하루 너무 힘겹더라.

직장도 지겹고, 너희들 키우기도 지겹고, 밥하기도 지겹고. 그렇게 어찌어찌 10년을 주부로 육아로 집안일로 버텼지.

아기를 태우고 자전거 타고,

도서관에 가고,

삼시 세끼를 해 먹으면서.


마흔에 막내를 낳고부터일까,

아빠는 너희들을 많이 돌보고 엄마의 일도 도우며

힘겨웠던 엄마의 지난 10년의 삶을 돌아봐 주고 위로해주기 시작했단다.

이제는 암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져서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었던 모양이야.

자신이 아닌 엄마의 삶도 돌아봐 주더라고. 유일하게 엄마의 삶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

서로가 안쓰럽게 생각하고 이해해 주는 어느 순간 아빠와 엄마는 가장 좋은 친구임을 깨닫고 서로 위로하고 지지하게 된 거야.


세상에 공짜는 없는 거지.

너무나 힘든 시간을 견뎌준 서로에게 감사하게 되었고,

잘 지나가 준 세월에 고맙고,

평범한 하루가 소중했단다

삼십 대에 마음대로 먹지 못했던 라면도 먹고,

같이 운동도 하고,

가끔 너희들과 재잘대며 외식도 하고 평범한 이 모든 것이 너무나 충만하고 감사한 것임을 우리는 가슴 깊이 느끼고 있었단다.


그렇게 같은 걸 느끼며 마음이 맞는 부부이자 친구가 되어있더라.


30대 엄마 아빠의 항암생활을 도왔던 책들
채식과 외식도 집에서 하려고 노력하며 보던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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