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우연히 듣게 된 소식이었다. 나는 정말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할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내가 알고 있던 그녀는 바늘 방바닥에 맨발로 세워놔도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사람처럼 단단해 보였으므로. 일적으로 알게 된 사이라 서로 사사로운 이야기를 나누기엔 무리가 있었지만 적어도 상대방이 어떤 고민을 털어놓을 때는 진지하게 경청할 줄 알고 그것과 함께 제대로 된 공감을 해줄 줄 아는 사람으로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던 모습은 무조건적으로 상대방 쪽 편에 서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근거 있는 조언들을 거침없이 해주었다는 것인데 전혀 억지스럽다거나 강압적인 게 아닌 소통 속에 이해가 오고 가는 식이었다. 그 조언을 귀담아들은 상대는 일시적으로라도 희망과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요즘은 모두가 오은영 박사고 너무 많은 사람이 상담가여서 꼭대기에 흔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혼란을 안겨준다. 관심을 넘어서 간섭을 하는 오지랖퍼들이 너무 많다. 가장 최악인 건 위로를 바라고 용기를 낸 사람에게 '넌 성격이 그래서 안돼' 라거나 '네가 너무 유별난 거 아니야?' 하는 식으로 탓을 하는 유형이다. 조언이란 말로 포장은 하지만 '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인데...'로 시작하는 대화는 대부분 이기적이고 마음 연 상대를 정죄한다. 이런 요즘, 그녀는 퍽 괜찮은 사람이었다.
세상을 등졌다는 말이 그녀의 상황을 대변하게 될 줄은 몰랐다. 직접 듣지 않았고 정말 우연히 들은 말이라 난 그 자리에서 얼어 버렸다. 그리고 알게 된 그녀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나를 참 놀라게 했다. 오해인지 진실인지 누구도 알 수 없었지만 어차피 죽은 자는 말이 없고 빈칸을 채워 넣어 이야기를 짓는 건 남은 자들의 몫이잖은가. 진실은 불편하고 평화는 거짓된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나는 관계의 사이가 얕든 깊든 내가 아는 사람들이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랐다. 그녀의 잘못도 있었으리라 생각은 했다. 관계의 틀어짐에서 일방적인 건 없었다. 쌍방의 잘못이 대부분이었고 1%라도 더 못한 사람이 더 많이 잘못한 게 되는 것이었다. 허물을 벗기듯 흘러나오는,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닌 낯선 사람이 되어 돌아온 그녀의 이야기는 믿기 힘들었지만 그 후 , 몇 년이란 시간이 흘러 완결난 나의 생각은 그녀의 삶이 시궁창이었겠구나 그녀도 힘들었겠지 하는 것이었다. 누구의 말이 옳은지 솔직히 나와는 상관이 없는 문제였다. 다만 감명 깊던 모습이 내게도 남아는 있어서 이해를 하려고 했을 뿐.
이해는 모두에게 해당되지는 않는 것 같았다. 꼭 그래야만 했냐는 질문도 쓸데가 없다. 시간을 돌려서 그 순간의 그녀를 내가 만나 선택을 달리 해달라 권유했다고 한들 지금과 이야기가 달라졌을까.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수는 없듯이 모두를 이해한다는 것도 쓸데없는 자만이며 오만이다.
잘 산다는 게 어렵지만 잘못 사는 건 더 어렵다. 적어도 의지가 있고 노력하는 사람에겐 더욱. 타인에 대한 이해 이전에 자신을 이해하는 마음이, 그래서 나를 돌보는 마음이 더 중요한 시점이라 생각했던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