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다살아났다고 함!
함박눈 내리던 완산도서관의 밤
전주남부시장 맞은편 완산칠봉이라는 조그마한 산 산책로 입구쯤에 완산도서관이 있다. 산 위에 도서관이라니……. 책 보러등산을 해야 하나? 하겠지만, 난이도가 있는 산은 아니다. 이름처럼 일곱 개의 봉우리를 잇는 긴 산등성이, 산책로마다 전주 시내를 여러 시선으로 담을 수 있다. 방문객이 엄청 많지는 않지만 그다지 휑한 느낌을 자아낼 만큼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전망이 확 트인 창가 자리는 완산도서관 맛집인지라 빈자리 없이 늘 차있다.
얼마 전 눈이 엄청나게 내린 날이 있었다. 책을 읽다 졸려서 엎드린 채 잠깐 눈을 붙였는데, 그사이 도서관으로 오르는 언덕길이 새하얀 눈으로 덮여 마치 썰매장처럼 변해 있었다. 폭설을 미리 눈치챈 사람들은 재빨리 도서관 언덕을 내려갔다. 줄지어 내려간 자동차 바퀴 자국에 녹은 길마저 순식간에 덮을 만큼 눈이 거세졌고, 택시를 부른 사람들은 택시가 언덕을 올라오지 못하자 어쩔 수 없이 언덕 아래까지 내려가야 했다. 썰매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엉덩방아를 찧는 사람들의 뒷모습 눈처럼 하얬다.
문제는 전동휠체어를 탄 청년이었다. 오도 가도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정확하게 전동휠체어 바퀴가 앞뒤로 왔다갔다 느낌표를 그리고 있었다. 내리막길 최선의 루트를 계산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계산이 끝났을까! 천천히 언덕을 내려가려 했다. 일행으로 보이는 다른 청년이 함박눈이 내리는 추위에도 패딩점퍼를 벗고 전동휠체어 등받이에 손잡이를 단단히 붙잡았다. 혹여나 전동휠체어가 미끄러져 위험한 곳으로 이탈하지 않도록 조절했다.
전동 휠체어를 탄 청년은 운전대 조이스틱을 지그재그로 바퀴 방향을 조절하며 길 밖으로 튕겨 나가지 않게 드리프트를 완성하고, 일행인 청년은 모자란 마찰력을 보태며 속도가 붙지 않도록 균형을 유지한 채 언덕을 내려갔다. 환상의 콤비네이션! 완산칠봉 봉우리마다 박수 소리가 메아리치듯 울려 퍼졌다. “완산칠봉이 이렇게 높은 산이었나!” 새삼스럽게 자신들이 내려온 길을 올려다봤다. 청년의 무사 생존을 지켜보던 도서관 불빛이 때마침 스르륵 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