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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아 Sep 02. 2024

외가의 두 여인과 나

<장 된장 그리고 김장>

      

이모와 외숙모 사이는 특별했다. 나름 팽팽했다. 가령 어딘가를 방문하실 때 외숙모가 음식을 해오시는 경우가 많았는데 고급진 재료에 잘 준비해 오셨음에도 이모는 조리법에 한 수 말씀을 얹으신다. 이때에도 외숙모는 나름 자신의 음식에 긍지가 있으셨고 특히나 당신은 국산 재료를 쓴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셨다. 반면에 이모는 당신의 외가가 궁중 수라간 출신의 내림 음식이라는 것으로 자부심을 품으셨고 올케는 시집와서야 배운 음식이라는 것인데 이에 대해 외숙모 또한 내심 목포 부잣집인 친정 에서 시절 음식 정도는 배웠음을 은근 내비치셨다.      


나는 여유가 생기자 외가의 음식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먼저 이모님과 삼 년 정도 밀접하게 교류할 기회가 주어졌다. 편찮으셔서 보행이 불편해지시자 휴일이면 내가 반찬을 해서 아니면 음식 재료를 준비해서 배낭에 메고 다니기 시작했다. 분량이 많아지는 날이면 그이가 동행했다. 그이는 자기 색시를 주선한 이모님을 좋아했다. 이모는 경제적으로 조금 어려운 듯했다. 평소 집안에서 그리고 대소가에서 명 판정단으로 똑소리 나게 행동하시고 당당하셔서 그동안은 알 길이 없었으나 오래 출입하며 겪어보니 그렇다. 티 나지 않게 옛 영화의 품격을 놓지 않으신 것에 존경을 표한다.      


이모는 엄마의 생계 수단이던 골목 가게를 주선하시고 뒤를 돌보아 주셨고 우리가 혼인할 때면 피로연 음식 마련은 물론이고 시댁에 보내는 이바지 음식까지 한 땀 한 땀 마련하셨다. 경이로운 경지였다. 음식의 조리법과 보관법 저장 음식 등을 자연스레 염두에 두었다. 특히 새우젓 보관법, 고춧가루 보관법, 멍게젓 오래 두고 먹는 법, 식혜 하얗게 밥알 동동 뜨게, 등 섬세한 기술을 아낌없이 주셨다. 00.4.25.(월) 막내 이모님 멍게젓 담그기. 나의 조리법 파일에는 이렇게 어른들과의 흔적이 적혀있다. 외가 식구들의 한결같은 성향은 음식을 매우 신성시 한다는 것이었다. 이모가 건강이 어려우시자 마저 배워두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외숙모에게 부탁드렸다.      


맨 먼저 약밥 찌는 법을 배웠다. 오이장아찌, 절인 고추, 두릅, 우엉, 엄나무 순 등의 저장법도 배웠다.

처음에는 집으로 모셔왔다. 장 된장과 고추장 그리고 종류별 김치를 배우기로 했다. 먼저 햇고춧가루가 나오는 추석 즈음 고추장을 담고자 그이랑 경동시장에서 알려주신 온갖 재료를 준비했다. 먼저 외가댁에 가서 외숙모를 모셔오는 일과 끝나면 모셔다드리는 일은 그이의 몫이었다. 내가 장 된장을 담근 지는 거의 20년이 되어가지만 아마도 인터넷의 조리법을 참조했던 듯하다. 아주 조금씩만 담아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외가의 비법으로 장 된장을 전수해보기로 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감수를 청했다. 메주는 황토방 숙성이라는 친구네 시골 시댁에서 공수했다. 메주를 가볍게 씻어 말려두고 학교에서 염도계도 빌려오고 항아리도 소독해 말려두고 모시러 간다. 설을 쇠고 첫 번째 말 날을 지켰음은 물론이다. 소금이야 오지항아리 두 개에 5년 된 간수 뺀 소금을 저장해 오던 터라 손끝에 묻어나는 건 없다. 우리 집에 오시는 외숙모님은 덜 추워도 밍크 외투를 챙겨 입고 오신다. 그분은 자신의 옷과 그리고 그릇에다 진심이시다. 큰 양은 대야에 소쿠리를 걸고 베 보자기를 걸치고 소금을 푼다. 염도계라니. 필요 없다. 5백 원 동전이면 된다. 그런 후 한나절쯤 지나면 독에 메주를 켜켜이 걸치고 소금물을 붓는다. 적당히. 적당히다. 숯과 대추 솔가지 하나로 마무리하면 오늘 일은 다 된 거다. 달력으로 40일 후에 장 가르기를 해야 한다. 그때를 기약하며 가신다.      


토요일을 기해 장 된장 가르기를 하는 날이다. 모셔온다. 2월 작업에 비하면 더 일이 많은 편이다. 독에 들어있는 메줏덩이를 건져내어 대야에 담는다. 독에 남은 국물은 잘 달여 간장이 될 것이다. 양파 배 사과 고추씨 파 뿌리 멸치 다시마 등과 함께 달여내어 작년 씨 간장과 섞어 끓인다. 이로써 우리 집 씨 간장은 나이테가 하나 더 늘어난다. 들통에서 간장이 끓는 동안 건져낸 메주는 잘게 치댄다. 이때 적당량의 소금과 간장을 섞는다. 잘게 부서진 메주에 찹쌀밥과 메줏가루 그리고 메주콩 삶은 것을 찧어서 까나리액젓과 함께 섞는다. 독에 담을 때는 밑에는 약간 질게 위쪽은 더 고슬고슬하게 간장으로서 조절한다. 맨 위에 김 낱장이나 다시마를 덮는다. 빛이 잘 드는 베란다에서 알맞게 익으면 나는 이 된장을 우리 집 방문객이나, 모임 때 적당한 이 그리고 특별히 청하는 이에게 덜어내 준다. 한결같이 어릴 적 엄마 맛이라고 좋아한다.      


열무김치와 물김치 백김치를 위해 열무 얼갈이 파 부추 생강 등 모든 재료를 사서 퇴근길에 그이가 외숙모댁에 들렀다 온다. 처음으로 힘들다고 내색을 한다. 그럴 만도 하지. 억척 마나님 덕에 힘든 일인 것이다. 낙지 오징어 조기 전어 등 외가댁의 선물도 봐온 모양이다. 음식을 배울 때마다 먼저 전날 시장을 보아주고 나는 다음날 가서 요리하고 요리한 음식은 두고 덜어오는 날이 계속되었다.     


김장철이 왔고 남도식 김장을 배워보고자 모셔왔다. 기왕에 하는 것이니 조금 더 하면 어떠리. 무리가 왔다. 외숙모댁과 자녀 삼 형제. 네 몫을 우리 거와 합치니 어마어마하게 일이 커졌다. 더구나 그 모든 재료와 양념의 준비가 출근과 병행해야 해서 사흘이 꼬박 걸렸고 정작 당일에는 어깨가 아파 칼질을 하기 힘들었다. 내색하지 않고 일을 마쳤을 때는 일이 커졌다. 거기에 남은 양념을 멍게 상자에 담아 모두 가져가시는 것이었다. 정리하고 김치통을 싣고 다시 모셔다드리고 와서는 우리 것만 할 것을 강하게 제안했다. 나는 정교함을 배우고자 했고 과연 국물 하나 첨가하는 방법도 밑간과 순서와 방법이 모두 달랐다. 외숙모님은 당신이 갖고 계신 믹서 두 대와 대형 양은 대야를 나에게 주셨다. 물려주기에 적당한 대상이라며. 며느리가 셋인데도 가장 아끼는 부엌 용품을 주시니 받아들고서 잘 사용하리라 다짐한다.      


어머니가 오래 부엌일을 봐주신 덕분에 부엌에 싫증이 나지 않고 아직 즐겁다. 그리고 아낌없이 나눈다. 부지런히 배우고 열정을 간직한 덕이다. 그분들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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