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한강의 여섯 번째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 이 책은 한강의 다른 작품에 비해 사건 중심적이다. 이 소설의 중심에는 미시령 고개에서 발생한 두 차례의 자동차 사고가 있다. 각각 40년의 시간차이를 두고 일어난 이 사고들은 주인공 이정희와 그녀의 친구 서인주, 그리고 서인주의 외삼촌 이동주와의 관계를 통해 전개된다.
서인주는 단거리 육상 선수로, 외삼촌 이동주와 함께 살고 있다. 이동주의 우주와 생의 기원에 대한 탐구와 그의 예술적 작업은 이정희에게 깊은 영향을 준다. 그들의 관계는 외삼촌의 죽음과 서인주의 부상으로 인해 급격히 변하게 된다.
이정희는 서인주가 자살했다는 미술평론가 강석원의 주장을 접하고 이를 반박하여 인주의 아이 민서를 보호하기 위해 진실을 찾기 시작한다. 그녀는 자신의 친구이자 사랑했던 인주에 대한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 과정에서 이정희는 서인주의 과거를 탐문하고, 그녀의 삶의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다양한 인물과의 만남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미시령의 흑백사진. 얼어붙은 얼음은 두꺼워진다. 술이 없으면 살 수 없었던 고인 물처럼 썩어갔던 인주 엄마. 인주는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새벽의 미시령 고개에서 사십여 년 시간을 두고 일어난 두 차례 자동차 사고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인주가 왜 죽었는지 알아내고 죽음을 왜곡하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그녀는 자신을 던진다. 바람과 물, 불과 흙의 네 원소가 만나 폭발하는 인주에 대한 진실이 담긴 글을 꺼내 가려 한다. 처음과 끝을 알고 싶어 천체물리학을 배웠다는 삼촌, 별들은 타오르는 불덩어리라서 아름답다. 부서진 조각들은 부시며 앞으로 나아간다. 어둠과 빛의 움직임 그 시간 속에 존재하는 우리의 빛에 관한 이야기들은 죽음과 생명의 세계에서 생생하게 소멸하고 충돌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 꺼풀 한 꺼풀 숨겨져 있던 인주의 삶을 정희가 쫓으며 찾아낸다. 진실의 퍼즐을 맞추는 시간들, 그녀가 알고 있는 인주의 삶은 달의 앞면과도 같다. 달이 지구를 공전하며 보여주는 면은 언제나 같은 쪽이라고 한다. 흉터 같은 뒷면은 쉽게 볼 수 없다.
강석원은 신화가 될 수 있는 조건의 여자에게 모든 것을 걸었다. 그 여자를 불멸하게 할 것이라고 아무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정희는 두 가지 의문을 갖는다. 첫째 인주는 왜 삼촌의 먹그림을 그렸는가. 둘째 왜 그날 밤 미시령에 갔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