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지원 Dec 19. 2023

연재를 마치고

나의 멋진 나나야 안녕! 

요즘 서머싯 몸의 '맥주와 케이크(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4)'를 읽고 있다. 

오늘 막내가 미용실에서 컷을 하는 동안 아주 인상적인, 

이 문장 나를 위해 쓴 거 아니야? 하는 부분을 발견했다.  


'가끔 소설가는 자신을 신처럼 생각하고 작중 인물에 대해 모든 걸 이야기하려 들 때가 있지만, 

반면에 작중 인물에 대한 모든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아는 것만 이야기하기도 한다. 

우리는 나이를 먹을수록 자신이 신이 아니라는 걸 점점 더 의식하기 마련이니 

작가가 경험으로 체득한 것 이상은 쓰지 않으려 한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일인칭 시점은 이 제한된 목적에 한해 대단히 유용하다.' 


서머싯 몸의 '맥주와 케이크'는 일인칭 시점으로 쓰인 작품이다.

마치 서머싯 몸이 내 옆에서 수다를 떠는 느낌이다.  

혼자 낄낄대며 구구절절 문단과 작가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비판한다. 

그렇게 아주 시니컬하게 서술해 나가다가 정작 자신이 멍청해지는 순간을 맞는데

노작가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그 순간 이 소설을 일인칭으로 서술한 것을 후회한다.

한참 시니컬하게 이놈 저놈 막 까면서 잘난 척(?)을 했는데, 

갑자기 톤을 바꾸는 것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일인칭으로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다른 비평가의 생각들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위의 인용한 부분은 그 내용 중 일부이다. 

그 문장들이 (또) 내 가슴에 불꽃쇼를 펼치며 각인됐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 일단 그 부분을 사진으로 남겼다.  

 


내가 브런치에 쓴 글들은 대부분 나의 일상이 담긴 에세이, 당연히 일인칭이다! 

그런데 에세이가 아닌 브런치북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하루키를 읽던 여자들 소설 하루키를 읽던 여자들 (brunch.co.kr)]이라는 소설이고

또 하나는 이번에 연재한 [나나는 그럭저럭 열두 살]이다.    

그리고 이번에 깨달은 건데, 그것들은 에세이 아님에도 같은 일인칭 시점이라는 것이다. 

나는 왜 일인칭 글쓰기를 벗어나지 못하나? 한계를 느끼고 있었는데

1874년에 태어나신 대작가 서머싯 몸께서 나에게 답을 주신 거다. 

나이를 먹을수록 자신이 신이 아니라는 걸 점점 더 의식하며 

경험으로 체득한 것 이상은 쓰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놀랄 일도 아니라는 것! 

 

[하루키를 읽던 여자들]에는 아파트 단지 안에서 엄마로, 아줌마로 살아가며 느낀 걸 썼고

[나나는 그럭저럭 열두 살]은 하루키를 읽던 X세대 엄마의 초등학생 딸이 

학교를 다니며 느낀 것, 생각한 것을 담았다. 

엄마와 아이... 그게 바로 대략 20년 내가 경험으로 체득한 딱 두 가지였다.   


  "서머싯 몸 작가님, 저에게 깨달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경험하고, 가깝게 들은 걸 가지고 일인칭 글만 쓰는 게 놀랄 일이 아니라니, 

 마음이 편안해져요!" 


그럼에도 나의 글쓰기가 딱 요만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조금은 슬프다. 

용맹하고, 거칠고, 홀딱 깨는 저 안드로메다로 가지 못하는 이 새가슴. 부족한 상상력.

고작 엄마, 아줌마, 아이의 일상이 나의 우주, 딱 그만큼인 거 같아 서글프다.  


아니다! 


그래도 그 서글픔을 딛고, 내가 할 수 있는 두 편의 글을 완성했다는 것만으로

나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그리고 다행히 나에겐 두 명의 딸이 있다.

먼 훗날 나의 딸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고,  

서른마흔쉰... 나이 들어가고 언젠가 엄마가 곁에 없을 때, 

내가 남긴 글로 위로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꼭 그러길 진심으로 바란다.



"우연아, 엄마를 위해 많은 그림을 그려줘서 정말 고마워!

 나나는 그럭저럭 열두 살은 엄마와 우연이의 합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아마 이 글을 가장 많이 열심히, 재밌게, 읽은 독자도 우연이 일거야.

 우연이가 나나의 일기로 즐거웠던 5학년, 행복한 열두 살을 

 오래오래 기억하길 바란다."


"우진아, 엄마 글 쓰라고 공모전 링크 보내줘서 고마워! 

 당선까지 됐다면 너무너무 드라마틱한 결말이었겠지만, 

 그거 생각보다 힘든 일인 거 너도 알지?  

 그래도 브런치북으로 남겨두었으니, 나중에 네가 딸을 낳고 

 그 아이가 열두 살이 된다면, 외할머니가 쓴 이야기라고 하면서 꼭 읽게 해 다오!

 취준생으로 공부하느라 요즘 너무 외롭고, 힘들지? 

 취직, 그거 생각보다 힘든 일인 거 엄마가 잘 아니까! 

 마음 편안하게 할 수 있는 만큼 하자!" 


그리고

더할 나위 없이 착한 소녀들... 그럼에도 왠지 모를 죄책감을 느끼는 

그 아이들에게 그 정도 마음 충분히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세상에 멋진 글, 인정받은 글, 품격이 넘치는 글이 넘치고 넘치는데

저의 작은 글을 단 한편이라도 읽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이전 14화 난생처음 남자친구에게 고백을 받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