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년 여성 # 살찔 결심 # 겨울방학 # 사춘기 수발
저녁 후식으로 먹은 산딸기롤케이크 4cm와 땅콩 몇 알에 몸무게 앞자리가 바뀌었다. 정말 너무 한 거 아닌가? '중년의 나잇살'의 의미를 매일매일 깨닫는 요즘이다. 여름, 가을만큼은 아니어도 종종 러닝을 하고 주 2회 요가도 빠지지 않고 있지만, 쉰을 넘긴 내 몸은 예전 같지 않다. 뭐랄까? '살찔 결심'을 했달까?
하여간 야무지게 체중을 올리고 있다. 20대에도 그렇게 날씬한 몸으로 살아본 적은 없으니 어느 정도는 그러려니 하는데, 그래도 지난 1년 간 운동에 쏟아부은 시간과 열정, 그리고 흘린 땀이 있어서 인지 억울한 마음이 생긴다.
체중이 아니라도 중년의 몸엔 문제가 많다. 조금만 무리를 하면 바로 청구서가 날라 온다. 지난 며칠 오른손 관절이 붓고 아팠다. 섬기는 교회에서 운영하는 작은 도서관에서 봉사를 하게 돼, 책 정리를 했다. 신나서 했는데, 그게 탈이 난 것이다. 이래저래 나이 드는 게 속상한 요즘인데, 이런 날 더욱 서럽게 하는 게 있다.
'그 숙녀는 날씬하고 연약해 보였다. 달빛 아래에서는 잿빛이던 머리카락이 현관의 가스등 아래에서는
꿀빛 같았다. 검은색으로 가장자리를 두른 아주 옅은 노란색의 스페인 망토를 걸치고 있었고,
사각거리는 드레스 끄트머리에서 두 발이 단추처럼 반짝였다' ['벤자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 중 일부]
브레드 피트가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원작인 그의 단편 소설
제목은 '벤자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 단편은 벤자민이라는 인물의 출생부터 죽음까지의 이야기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벤자민은 노인으로 태어나, 아기로 죽음을 맞는다. 위 내용은 벤자민이 결혼하게 될 여자, 스무 살 즈음의 힐더가드를 묘사한 한 문장이다. 한마디로 힐더가드, 예쁘다는 거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다.
'벤저민 버튼이 걱정하는 것은 딱 하나였다. 더 이상 아내에게 끌리지 않았던 것이다.... 신혼 때 벤저민은 아내를 숭배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꿀빛 머리카락은 무미건조한 갈색으로 변했고 푸른 에나멜 같은 눈은 싸구려 도자기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그녀는 자신의 삶에 지나치게 안주하고, 너무 평온하고, 너무 만족하고, 너무 활기가 없고, 너무 진지해졌다.' ['벤자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중 일부]
나이가 들면 여성의 머리카락은 꿀빛에서 무미건조한 갈색으로, 눈동자는 푸른 에나멜은 싸구려 도자기로 바뀐다. 피츠제럴드, 그의 작품 속 여성은 완벽하게 아름답거나, 그렇지 않거나 딱 두 가지로 구분되는 거 같다. 작품 곳곳에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묘사가 엄청 많다. 직유, 은유 등등 온갖 문학적 표현도구를 이용한
찬양 또 찬양, 숭배 또 숭배. 하여간 아름다운 여성을 묘사하는 데 이렇게 진심이다. 그가 이렇게 젊은 여성의 아름다움에 집중하다 보니, 그 반대편에 놓인 나이 든 여성은 상대적으로 더욱 비참한 존재가 되는 느낌이 없지 않다.
이 단편은 예전에도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땐 그냥 신기한 이야기네, 그래도 고전 한편 읽었다. 했는데, 중년이 돼 읽으니 새롭게 깨달아지는 것들이 있다.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통념이라는 것의 정체, 분명 노인인데, 지팡이를 뺏고 딸랑이를 쥐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거부와 혐오 나아가 저주까지.
그리고 새롭게 거슬리는 일부 문장과 표현들!
'겨울 꿈'이라는 단편의 주인공은 덱스터라는 남자다. 역시나 덱스터가 어린 시절부터 흠모하게 되는 한 여성이 등장한다. 이름은 주디 존스. 당연히 아름답다. 아주 치명적이다. 다음 문장은 덱스터가 주디존스를 처음 본 순간이다.
'나이 어린 소녀들이란 흔히 지금은 예쁘장하면서도 못생겼지만 몇 해만 지나면 이루 말할 수없을 만큼
얼굴이 예뻐져서 수많은 남성들에게 적잖이 슬픔을 안겨다 주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서는 벌써 미모가 엿보였다. 웃을 때 입술을 입 가장자리 아래쪽으로 비트는 모습이라든지 -그리고 맙소사!- 거의 정열적이라고 할 두 눈동자에는 어렴풋하게나마 사악함마저 깃들어 있었다. 그런 여자들에게 활력이란 타고나는 법이다. 벌써 가냘픈 몸매에서 광채 같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겨울 꿈' 중 일부]
사악함이 깃든 눈동자, 광채 같은 빛을 뿜는 가냘픈 몸매! 안타깝게도 이토록 아름다운 여성 주디 존스는
자기만을 바라보는 덱스터를 쥐락펴락하며 온 동네가 떠들썩하게 문어발 연애를 한다. 결국 그녀를 포기한 덱스터는 다른 여성과 약혼을 한다. 이름은 아이린, 작품 속 그녀에 대한 묘사는 이게 전부다.
'머리카락이 연한 아이린은 마음씨가 상냥하고 착하고 조금 살이 찐 편이었다.' ['겨울 꿈' 중 일부]
한 마디로 예쁘지 않다는 거다. 덱스터가 아이린과 약혼을 했다는 사실을 안 주디존스는 댄스파티장에서 우연히 만난 덱스터를 데리고 파티장을 나와 함께 차를 타고 자신의 집 앞으로 간다. 그리고 말한다.
"난 누구보다 예뻐요. 그런데 왜 행복할 수 없나요?" 그녀의 축축한 두 눈이 그의 굳은 마음을 쥐어뜯었다.
"잠깐 들어가지 않을래요?" 덱스터는 대답한다. "좋아. 들어가지" ['겨울 꿈' 중 일부]
이게 무슨 상황인가? 이러고도 덱스터는 그녀와 결혼을 하지 못한다. 이후 오랜 세월이 흘러 사업상 만난 지인에게 주디 존스의 소식을 듣게 되는 덱스터. 지인의 친구가 무려 그녀의 남편이다. 주디 존스와 남편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해주던 지인이 주디존스가 처음 디트로이트에 왔을 때 예뻤다고 말한다. 그러자, 덱스터는 불쑥 이렇게 묻는다.
"그 여자는...... 이제는 예쁘지가 않은 가요?" ['겨울 꿈' 중 일부]
피츠제럴드는 '젊은 여성의 예쁨'에 왜 이토록 천착하나? 하여간 그렇지 않은, 나 같은 여성이 읽기엔 불편한 구석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물론 예쁜 여성을 향한 지독한 흠모 끝에 불행한 죽음을 맞은 그의 일생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다. 그가 더 오래 살았다면 나이가 들어가며 점점 빛을 잃어가는 여성도 애잔하게 바라볼 수 있었을까? 어떤 아름다움도 발견할 수 있었을까? 쉽지 않겠다. 피츠제럴드보다 오래 장수한 영국 작가 서머싯 몸은 그의 단편에서 나이 든 여성의 손을 '조류의 발'이라 표현했다.
그날은 마침 여러 집안 일로 손이 많이 거칠었던 날이라, 그 문장이 유독 아프게 다가왔다. 내 손이 조류의 발로 보일줄이야. 그래도, 피츠제럴드의 단편 중 [컷글라스 그릇]이라는 작품은 나에게 나름 거대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었다.
나른한 결혼 생활, 잠깐의 외도 끝에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한 여성의 이야기다.
남편은 외도를 한 아내를 끝내 존중하지 않고, 술을 많이 마시고, 사업을 그르친다. 점점 불행으로 달려가는 결혼 생활이지만, 아내는 성실하고자 노력한다. 아들과 딸을 돌보는 일에 모든 열정을 쏟는다. 하지만 어린 딸은 행복한 결혼 생활의 상징과도 같은 유리그릇에 손가락을 베어 결국 손목까지 잘리고, 아들은 전쟁에 나가 전사한다.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결혼 생활, 그녀는 빛나는 컷글라스 그릇을 들고 현관문을 나간다.
그 순간 그녀는 발이 미끄러져 균형을 잃고 유리그릇을 두 팔로 안은 채 절망의 소리를 부르짖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땅 아래로...... ['컷글라스 그릇'중 일부]
수학문제집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아이 옆에서 읽기 딱 좋은 단편이라 생각했다. 한 가정의 아내로, 엄마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일인가? 남편과 아이들의 문제는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인데, 마음은 불안하고 속이 썩어나간다. 몸은 살찔 결심을 하고, 눈은 싸구려 도자기가 된다. 자고 일어나면 머리엔 새치가 툭 불거져 올라오고, 손은 조류의 발로 변신한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거실 창밖을 바라보니 아파트 창문이 수십 개다. 저 수많은 아파트 창문 안 쪽에 나처럼 골머리를 앓는 중년의 여성이 이십 명? 아니, 삼십 명? 더 많을 수도 있다. 아이들이 없어서 학교가 사라진다, 뉴스는 시끄럽지만 우리 동네는 아니다. 근처에 두 개의 초등학교가 있는데, 하나는 증축공사를 했고, 나머지 하나는 운동장에 2층짜리 모듈러 교실을 세웠다. 지금은 겨울방학 중이니 다들 고단할 것이다. 나도 요즘 중학생이 되는 늦둥이 막내와 겨울방학을 보내는 일이 만만치 않다. 끼니는 물론 사춘기 발작 수발에, 수학 문제집 풀 때 옆에 앉아 있어 주는 일까지... 이번 막내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오래전 병설 유치원 입학과 졸업, 초등학교 입학 등 다양한 학부모 모임과 행사를 통해 교류했던 엄마들을 오랜만에 만났다. 서른 초중반, 풋풋했던 엄마들이 마흔 줄에 접어들자, 얼굴엔 없던 주름이 생기고 눈빛도 예전의 그 싱그러움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한결 깊어진 그녀들의 눈빛이 왠지 낯설었다. 그 또한 인생을 알아가는 아름답고 순차적인 과정이라 생각하지만, 그녀들을 변화시킨 그 세월이 나에게도 적용돼 이렇게 살이 찌고, 종종 아프고, 무기력해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쓸쓸하다. 가혹한 전지를 당해 몇 개 안 남은 가지로 서 있는 겨울나무 같다. 이 속상함, 서러움을 누군가에게 막 토로하고도 싶지만, 내 옆엔 사춘기 열기로 뜨끈뜨끈해진 막내가 짜증과 콧김을 내뿜으며 수학 문제집과 전투 중이다. 명상을 해본다. 코끝으로 들고 나는 숨에 집중해 본다. 고전도 읽었다. 도리스 레싱, 서머싯 몸, 다자이오사무... 그렇게 지난주엔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중 피츠제럴드 단편을 펼쳤는데, 이렇게 불쑥 서러움이 폭발하고 만 것이다.
아니, 작가님 나이 든 여성한테 무슨 억한 심정 있으세요? 나이 든 늙은 여성은 작가님이 쓴 책을 절대 읽지 않을 거라 생각하신 거예요? 사는 게 참 씁쓸하다. 쓸쓸하기도 하고...
중년 아줌마에겐 피츠제럴드 보다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 좀 더 위로가 되는 거 같다.
그래서, 피츠제럴드 유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