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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Nov 20. 2023

겨울 러닝 고찰

#러닝매직이 사라진 그날 #룰루레몬VS안다르 요가복 비교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마지막 부분에 이런 내용이 있다.


'만약 내 묘비명 같은 것이 있다고 하면, 그리고 그 문구를 내가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면, 

이렇게 써넣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 / 작가 (그리고 러너) 1949~20** /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이것이 지금 내가 바라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이 문장이 (또!) 내 마음 판에 불꽃쇼를 펼치며 각인된 순간이 있었다. 

그즈음의 난, 운동하는 일상이 자리를 잡아 점점 러닝을 '할 수 있는' 몸이 되어가고 있었다.

계속 달려도 숨이 차지 않고, 달릴수록 몸이 가벼워지고, 달릴 때 시간이 빨리 흘러갔다. 

최대 기록 7km, 초반에 500m 정도 걸었다 쳐도 나머지 6.5km를 8.7의 속도로 달린 셈이니, 

중년 아줌마의 체력으로 거기까지 도달한 것도 대단하다 생각했다. 

내 분수에 맞는 '러닝의 희열'을 알아가던 그때,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이 문장을 무슨 경전이라도 되는 양 가슴에 품었다. 그렇게 멈추지 않고 달리면 점점 땀이 흐르고, 

몸이 가벼워지다가 마침내 정신이 맑아지는 순간에 도달했다. 목표를 채우고 러닝 머신을 내려올 때의 

행복감은 공복에 맡은 라면 끓이는 냄새만큼이나 자극적이고 매혹적이다.  

정수리에 뻥 뚫린 구멍으로 뜨거운 김이 솟구쳐 오르는 것 같기도 했고, 

몸 안에 공기가 반쯤 찬 듯 가벼운 그 느낌이 정말 좋았다. 그래서 가끔 두려웠다.  

어느 날 갑자기 러닝 매직이 사라지고, 달릴 수 없게 되면 어떡하지? 


백화점 충동구매로 우리 집 주방에 들어온 고가의 핸드드립 서버가 있었다. 

화가 세잔느의 작품 속 소품으로 등장해도 될 만큼 우아하면서 아름다운 서버였다. 

하지만 유리가 어찌나 얇은지, 작은 실수로도 깨질 것 같아, 사용하는 내내 마음이 불안했다. 

아차 실수로 서버가 깨질 뻔하는 일이 일어나면, 난 그 서버를 일주일 동안 사용하지 않았다. 

위험이 쌓이는 게 싫었다. 위험이 제로 세팅될 때까지 수납장에 넣어두고 잊어버렸다. 

하지만, 그 서버는 결국 깨졌다. 평온한 어느 오후, 막내의 팔꿈치가 그 서버를 툭 건드렸고,

곧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이 부서졌다. 아무도 탓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난 많이 속상했고 진심으로 슬펐다.

"이 예쁜 걸... 이 예쁜 걸..." 하면서 눈물도 흘렸다. 

아끼는 건 사라진다. 나도 달릴 수 없게 될 것이다. 

결국 그날이 오고 말았다.  


처음으로 달리기를 중도에 포기하고 러닝 머신의 stop버튼을 누른 그날, 

난 초능력을 뺏긴 히어로처럼 무기력하고 우울한 하루를 보냈다. 

요 며칠 아침에 베이글을 먹었는데, 그것 때문인가?

갈치조림에 넣은 가을무가 어찌나 달고 폭신폭신 입 안에서 녹아버리던지 밥을 여러 번 추가해 먹었다.

가을 무야, 너는 왜 이렇게 맛있는 거니? 분명한 건, 지금 내 몸이 고칼로리의 음식을 원하고 있다는 거다! 

쌀쌀해진 날씨 탓도 있을 거다. 체중이 조금이라도 늘면 러닝은 확실히 힘들어진다. 


복장도 문제다. 어차피 달리기 시작하면 체온은 올라간다. 그때는 긴 옷이 거추장스럽기 때문에

난 그냥 초반부터 반팔 반바지를 입고 달렸다. 하지만 누군가 환기를 위해 열어둔 창문으로 헬스장 내부엔 

찬 공기가 가득했고, 난 꽤 오래 오들오들 떨며, 꽝꽝 언 손끝을 입김으로 데웠다.    

그리고, 러닝 머신도 문제였다. 이번에 새로 교체된 러닝 머신이라 익숙하지 않은 것도 있었고

결정적으로 달리는 바닥이 너무 딱딱했다.     

억울한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 쓰긴 했지만, 나도 안다. 이 모든 것이 다 변명이라는 걸...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겠다는 나름 비장했던 '각오'가 무너지고 말았다. 

이후 이틀 동안은 시시껄렁하다고 무시했던 실내 자전거를 열심히 돌렸다. 

하루 총 한 시간을 돌리니 기록이 8km. 

러닝 하고, 요가하고, 밥 짓는 아줌마로 사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설상가상, 날씨가 쌀쌀해지니 요가도 힘들어졌다.

러닝을 포기한 화요일, 이후 수요일과 금요일 요가 시간엔 몸을 살피고, 돌보며 동작에 임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우리 아파트 커뮤니티 짐룸은 바닥 난방이 안 되고, 온풍기만 천장에 있어서

바닥에 살이 닿으면 그 찬기에 온몸이 얼어버린다. 물론 이 느낌, 처음은 아니다. 

작년 겨울에도 우리는 이렇게 요가를 했었다. 어느 순간 날씨가 풀리면서 그 차가웠던 시절을 다 잊어버린 것이다. 매트를 두 장씩 붙여서 깔고, 시작할 땐 겉옷하나를 걸치고 하다가 몸이 따듯하게 데워지면 

그 옷을 벗고 동작에 더 열심히 몰두했다. 마지막 사바아사나 땐 우리 강사님이 준비한 섬유유연제 향이 

폴폴 풍기는 담요가 있으니 걱정 없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서로를 격려하고 가끔은 깔깔 웃으며

함께 수련하고 우정을 쌓았다. 그리고 지난주부터 나의 요가동지인 지나쥬르 작가님이 추천해 주신

룰루레몬 요가복을 입기 시작했다. 전에는 안다르 요가복을 입었는데, 확실히 차이가 느껴진다.

안다르는 내 몸이 요가복 안에 들어가 있는 느낌을 준다. 혈액순환은 잘 안 될지 몰라도 

군살은 조금 감출 수 있다. 하지만 룰루레몬은 요가복이 내 몸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군살은 감출 수 없지만, 내 몸에 자유를 주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솔직한 내 몸이 보이니 수련에 더욱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내 예상을 뛰어넘는 가격이라 계산할 때 손이 좀 떨렸는데, 그래도 

내 몸에 밀착되는 아이템이니 꼭 한 번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래, 이건 과소비가 아니라, 투자다. 

더 열심히 수련해서 건강으로 뽕을 뽑기로 마음먹었다. 

  

요가 강습이 끝나고 커뮤니티 복도를 지날 때 '나의 러닝머신'이 보였다. 어깨에 맨 요가 매트를 옷장에 넣고, 바로 달릴까도 생각했지만, 왠지 모를 두려움이 밀려와 그냥 집으로 와 버렸다. 나 정말 다시 달릴 수 없으면 어떡하지? 초조한 마음도 생겨났다. 어질러진 아침 식탁을 치우고, 식기세척기를 꽉 채워 돌리고,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도 정리하고, 마트에 가 주말에 먹을 식재료를 사서 냉장고에 넣었다. 

가을무(!!!!!)와 갈치로 조림을 하고, 돼지 등뼈에도 가을 무를 넣고, 푹 끓여 뜨끈한 라면을 만들 예정이다. 

밥 짓는 아줌마로서 주말 준비를 마치고 나니, 갑자기 초조해졌다. 그래도 요가는 했는데, 러닝은 어떡하나? 금요일이 지나고 주말까지 지나고 나면 정말 러닝 매직이 완전히 사라질 것만 같았다. 

어떻게 얻어낸 러닝 매직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날려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얼른 운동복을 갈아입고, 

물을 챙겨 헬스장으로 내려갔다. 

얼굴이 익숙한 운동고수님이 달리고 있다. 나는 바로 옆, 새로 들어온 러닝머신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러닝 머신 위에 수건과 휴대폰, 물통을 올려놓았다. 운동 고수분이 옆에 선 날 보며 미소를 짓는다. 

나도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 순간, 왠지 달릴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일단 발목과 무릎을 충분히 돌려주었다. 러닝의 신이 있다면, 저에게 러닝 매직을 돌려주세요! 속으로 외치고 속도 5.8km로 걷기 시작했다. 러닝 머신의 바닥도 적당히 부드러워 익숙했다. 다행히 온풍기가 작동 중이라 공기가 따듯하게 데워져 있어 한기도 들지 않았다. 500m 정도 걷고, 평소 같았으면 8.7km 속도를 올려 달리기 시작했을 텐데, 왠지 용기가 나지 않았다. 몇 번의 한숨과 몇 번의 망설임 끝에 1km를 지나는 시점에 속도를 천천히 올려보았다. 드디어 속도는 8.7km에 이르고, 음악은 스포티파이 내 운동 플레이리스트 중 Earth, Wind & Fire의 'September'. 일단 달렸는데, 왠지 낯설다. 발목에 힘이 들어가며 점점 불편해졌다. 이럴 땐 코어의 힘을 주어 발목으로 가는 하중을 줄여야 한다. 발이 혼자 달리는 게 아니라, 몸이 한 덩어리로 달리는 느낌이 필요한 것이다. 부장가아사나라고 일명 코브라 자세를 하며 단련해 온 등 근육을 불러냈다. 

그리고 최대한 가볍게 사뿐사뿐 달렸다.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점점 모든 상황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다시 달릴 수 있다. 아직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의 러닝 매직. 

아직은 러닝하고 요가하고 밥 짓는 아줌마로 살 수 있겠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깨달은 게 있다. 겨울 러닝을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거다. 

일단 체온이 낮아지면서 몸이 뻣뻣하기 때문에 작은 실수로도 다칠 수 있고, 땀이 난 후 찬바람을 만나면 

감기에 걸릴 수도 있다. 나의 육아동지이자 운동동지인 그녀도 최근 한의원을 방문했다. 열심히 운동을 했을 뿐인데, 잠들 수 없을 만큼의 통증이 찾아왔다고 한다. 우리는 새로 들어온 그 딱딱한 러닝머신을 의심하고 있다. 그녀는 이제 실내 자전거와 걷기, 잠깐의 러닝으로 운동을 지속하기로 했다. 

나 역시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그 경전을 내려놓고, 1km씩 걸었다가 달렸다가를 반복해 총 6km의 목표를 세워본다. 중년이다. 무리했다가는 정말 큰일 난다. 


러닝도 겨울나기가 필요하다. 살살하자.      



러닝매직을 되찾은 그날의 기록.


           

 


돼지등뼈와 가을무로 육수를 내 끓인 라면




*제 브런치북 [러닝 하고 요가하고 밥을 지어요] 다음 편으로 

 [겨울에도 러닝하고 요가하고 밥을 지어요]라는 제목으로 계속 써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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