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육아 #엄마 #몸 #재취업 #싱잉볼
휴우... 인생 숙제 하나가 일단락됐다. 이 숙제에 해시태그를 단다면, #돈#가족... 거액의 유산 싸움 그런 거라면 자세히 쓸 수라도 있겠지만, 어디 가서 말하기도 부끄러운 수준의 줄거리다. 그래도 나에겐 고단하고 넌덜머리 나는 과정이었다. 감정을 배제하고 일을 순차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하는데, 그게 안 됐다.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가 있나? 이 문장에 머릿속에 깊이 똬리를 틀고 앉아 내 이성을 마비시켰다.
감정이 먼저 튀어나오니 마음은 쑥대밭,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가뜩이나 예민하고, 감정에 몰두하는 성격인 데다 중년 이후 그 성향이 더 확고해진다. 몇 번은 벼랑 끝에 선 기분으로 엉엉 울었다.
감정보다 이성이 앞선 남편의 도움으로 일단락 됐다. 불씨는 남아 있다. 그냥 사그라들지, 다시 타오를지
아직 모른다. 마음이 널 뛸 때 문득 요가 강사님이 명상 시간에 낭독해 준 문장이 떠올랐다.
'니체와 산책을'(저자 시라토리 하루히코 2021)이라는 책의 일부분이었는데, 그 문장을 정확하게 옮길 순 없지만, 어쨌든 내용은, 쓸데없는 생각이 밀려오면 그것에 몰두하기보다는 차라리 몸에 집중하라! 였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철학자 니체가 차라리 몸에 집중하라고 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재밌고, 인상 깊었다. 그래, 차라리 몸에 집중하자! 요즘 내 슬로건이다. 마음이 힘들어 축 늘어져 있다가도
벌떡 일어나, "그래, 차라리 몸에 집중하자!" 외치며 운동복을 입고 헬스장으로 내려가 러닝을 했다.
일단 달리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팔과 다리의 움직임, 호흡에 집중하기도 바쁘기 때문에 복잡하고 쓸데없는 생각들이 부서지고, 사라진다. 그리고 수요일과 금요일 오전 9시를 기다렸다. 나의 소중한 요가시간.
얼마 전부터 요가 전 명상 시간에 싱잉볼이 등장했다. 우리의 명상에 함께 할 적절한 싱잉볼을 찾고 있다고 강사님이 여러 번 언급을 하셨는데, 드디어! 난 명상에 관심이 있어, 싱잉볼에 대해서도 호기심을 갖고 있던 터라 반가웠다.
"어머! 드디어 싱잉볼이 왔네요!"
"네. 우리 딸이 협찬해 줬어요."
"아! 저희 애랑 동갑이 그 밀레니엄 베이비요?"
"네, 호호"
몇 번의 스몰토크를 통해 알게 된 건데, 강사님의 딸과 내 딸은 동갑이다. 바로, 밀레니엄 베이비.
그리고 나와 비슷하게 강사님에게도 나이 차이가 나는 늦둥이 막내가 있다. 강사님은 나보다 한 살 위고,
원래 직업이 요가강사는 아니었는데, 다른 단지 아파트 커뮤니티에서 생활 요가를 하다가 자격증을 따고
직접 강습을 시작하셨다고 한다. 그러니까 전업주부였다가 요가 강사라는 새로운 직업으로 재취업에
성공하신 거다! 와우! 사실 우리 요가 클래스는 인원이 많지 않다. 많으면 네 명, 적을 땐 나 하나를 놓고
강습을 하기도 하는데, 한결같이 설렘 가득한 표정이셔서 신기했었다. 그런데 강사님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며
모든 것이 다 이해됐다. 내 옆에 오렌지색 요가복 언니를 포함해 총 네 명이 매트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명상이 시작됐다. 설레는 마음으로 싱잉볼의 소리를 기다렸다. 드디어,
뎅~~~~~~
청아하다. 가느다란 포물선을 그리는 듯 소리 하나가 공중으로 떠오른다. 그리고 잠시 후 바닥으로 떨어진다. 조약돌 한 개가 호수에 파문을 일으키듯 우리의 공간이 일렁인다. 그 순간 내 양 미간이 뜨거워지며 눈 가에 신경이 곤두섰다. 잠시 후 눈물이 차올랐다. 엄마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는 딸의 마음이 나에게 전해졌다.
시아버지를 모시는 엄마, 늦게 태어난 동생을 돌보는 엄마, 나이 들어가는 엄마... 그 와중에도 무너지지 않고 몸에 집중하며 요가라는 나만의 성을 짓고, 드디어 홀로 서, 재취업의 깃발을 꽂은 당당한 엄마의 모습에
딸은 큰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우연한 계기로 기독교 잡지에 '그 아줌마 공감일기'라는 글을 연재한 적이 있다. 2년 반 정도 총 20편의 글을 연재했는데, 그 잡지가 폐간되는 바람에 지금은 그저 추억이다.
글을 연재하게 되었다고 딸에게 말해주던 순간이 기억난다. 그때 딸은 고등학생이었고, 나는 아이를 등교시키기 위해 운전을 하던 중이었다. 엄마가 '남의 글'이 아니라 '엄마 글'을 써서 연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하자,
딸은 기뻐했고, 난 눈물이 났다.
엄마의 요가 수업에 작게라도 도움이 되고자 싱잉볼을 협찬한 그 딸의 마음이 어땠을지,
또 딸의 응원을 받은 강사님의 마음은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또 눈물이 차오른다.
11월이다. 지난주엔 잠시 찬바람이 불었지만, 다시 바람이 따듯하다. 낮에는 덥다. 인생 숙제가 일단락되고 하는 첫 요가 수업이라 왠지 더 오래 기다린 느낌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요가매트를 들고 커뮤니티를 달려
강습실 앞에 도착했는데, 불이 꺼져 있었다. 오늘 강습이 없나? 갑자기 길을 잃은 강아지처럼 두리번거리는데, 멀리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곧 강사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늦지도 않았는데, 급히 서두르신다.
우리는 마주 앉아 잠시 스몰토크를 나눴다. 일상적인 대화를 다 주고받았는데도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오늘, 나 혼자 강습하는 것인가? 부담이 밀려왔다. 그리고 살짝 머쓱해지며 얼마 전 그 일이 떠올랐다.
싱잉볼 소리에 눈물이 차오른 그 사건. 그때 내 자리가 강사님 바로 앞이라 아마 눈치를 채셨을 것이다.
다행히 내가 잘 추스르고 넘어가자 눈 감아주셨다. 하지만 궁금하셨을 것이다.
"싱잉볼 처음 온 날, 저 눈물 난 거 보셨죠?"
"아, 네..."
"그냥... 엄마의 도전을 응원하는 딸의 마음, 그런 게 느껴져서 감동받았어요."
"아! 그러셨구나."
"강사님, 요가 강습 하시는 거 엄청 즐거우시죠?"
"네... 즐거워요. 강습 준비하면서 수련하는 것도 즐겁고요."
"그래 보여요."
"그리고 오늘 크리스마스 선물 미리 준비했어요."
"선물이요?"
"강습 끝나고 사바아사나 하실 때 체온이 내려가서 서늘하잖아요, 그때 덮을 담요."
"아!"
옷 수납용 상자(*이케아)의 지퍼를 여니 그 안에 작은 담요들이 돌돌 말려 들어있다.
"이따가 강습 마치면 덮어드릴게요."
"와... 너무 좋아요!"
강사님과 나, 둘만의 수련이 시작됐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상체를 늘리는 간단한 스트레칭 동작으로
시작했지만 점점 동작이 깊어졌다. 중간에 박하아사나라고, 일명 까마귀, 두루미 자세에 도전했다. 엎드린 상태에서 두 팔에 무릎을 얹고 발을 뗀다. 온몸을 팔로 지탱하는 듯 보이는 동작인데, 100% 완성시키진 못했지만, 내 생각엔 68% 정도까지는 도달한 듯 느껴졌다.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내 몸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이런 기분, 정말 오랜만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이 여전히 남아있음을 깨닫는다. 당연하다. 해결이 안 되니 계속 남아 있는 것이다. 시간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앞으로도 절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도전이 성취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이제는 받아들인다. 강사님은 현재 수련 중인 동작을 알려주시며, 여기까지는 되지만, 그다음은 아직 안 된다고 했다. 여기까지 되는 것도 시간이 꽤 걸렸고, 처음엔 영 안 될 거 같은데, 계속 수련을 하니, 어느 날 갑자기 되기도 한다며 신기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요가 경전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해요. '끊임없는 수련,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마음.'
지원님, 전 육아에 이 말을 자주 적용해요. 아이가 엄마가 원하는 만큼 성취를 해주지 않을 때
너무 속상하잖아요. 그러지 않으려고, 저 많이 노력해요."
'끊임없는 수련,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마음' 라임도 훌륭한 이 문장이 또 내 마음 판에 불꽃을 일으키며 새겨졌다. 차라리 몸에 집중하자! 에 이어 두 번째다. 물론 육아에도 적용되지만, 나에겐 특히 글쓰기가 그렇다.
끊임없이 글을 쓰는 건 할 수 있다. 살다 보면 써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 이 세상에 필요한 글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써야 하는 순간이 오면 글을 쓰게 된다. 오늘도 그렇다. 하지만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건, 쉽지 않다. 솔직히 말해, 성공의 맛. 난 그 맛이 그리운 거다. 하지만 요가를 통해 배운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걸. 인생 숙제도 그렇다. 중년에 직면한 넌덜머리 나는 인생 숙제는 노년까지도 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숙제를 끝내기 위해 노력은 해야겠지만, 결과에 연연하면 안 될 것이다. 연연해 봐야 마음만 지옥이 된다. 이래서 중년엔 마음은 접고 차라리 몸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약속된 시간 50분에서 20분이 지나 비로소 사바아사나가 시작됐다. 부스럭 소리와 함께 가벼운 담요 한 장이 내 몸 위로 사뿐히 날아들었다. 그리고 울려 퍼지는 싱잉볼 소리... 코 끝에 낯선 낯선 향기가 날아와 앉는다. 달콤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섬유유연제향이다. 감동이 밀려왔다. 이런 세심함으로 얼마나 빈틈없는
육아를 해오셨을지... 그러면서도 결과에 연연하지 않으려 애를 써야 한다. 이게 바로 엄마의 숙명.
"지원님,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마치 친구랑 수련하는 거 같았어요."
"아니요, 전 존경심이 있거든요. 친구 아니고, 요가 선생님. 감사합니다!"
근력이 차오르자, 마음이 가벼워진다. 앞으로도 고달픈 인생 숙제는 끊임없이 날 힘들게 하겠지만,
나는 당당하게 직면하고 끊임없이 수련하며 결과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