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 요가하는 중년의 그녀
다시 러닝에 매진하는 중이다.
그 사이 요가에 좀 더 마음이 기울었던 건, 헬스장 에어컨 때문. 에어컨이 머리 위에서 찬바람을 내뿜는 게 싫었다. 땀이 날만하면 식어버린다. 고비를 넘겨 땀을 흘리면 몸이 시렸다. 그렇다고 창문을 열 수는 없다.
나 혼자 사용하는 장소도 아니다. 진짜 이기적인 마음으로 창문을 열었다 해도 불볕더위에 숨 막히는 더운 바람이 훅 들어올 것이다. 에어컨 바람은 차고, 바깥공기는 뜨겁고. 진심으로 러닝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모든 소리가 핑계에 불과하겠지만... 안타깝게도 난 이 정도의 인간이었다. 그나마 요가에 매진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더운 여름, 시원한 바람이 불기를 기다리며 집에서 실내 자전거를 돌리며 체력단련을 했다. 그리고 드디어 9월! 마법처럼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이제 슬슬 러닝을 하라는 신호인가 싶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러닝이 될까? 달려본 지 한 달은 된 거 같은데... 이상하다. 모르겠다, 사실 나더러 러닝을 하라는 사람도 없고, 러닝을 안 한다고 뭐라 할 사람도 없는데 왜 이렇게 나 혼자 가슴이 두근거리나? 나를 좋아해 줄까? 싶은 그런 마음 같기도, 이게 바로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짝사랑의 심정인가? 유튜브 알고리즘이 내 마음을 알고 러닝 관련 컨텐트를 마구 추천하고 있다. 이것저것 보다 보니 궁금해졌다. 나는 러닝 5km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나? 달린다면 기록은 얼마일까? 예전 기록을 찾아보면 7km를 달린 적도 있긴 하지만, 처음에 워밍업으로 걸었던 시간도 있고, 중간에 물을 마시기 위해 잠깐 속도를 늦춘 적도 있으니 그 기록은 정확하다고 보기 어렵다. 그럼 한 번 도전해 볼까?
9월 12일
오랜만에 러닝이라 긴장을 많이 했다. 그래도 스포티파이의 빠른 템포의 곡들을 들으며 신발 끈을 묶었다. 깊은숨을 들이켜고 내쉬고... 발목을 하나씩 천천히 오래도록 돌려주고, 허벅지 뒤 햄스트링을 늘리며 다리야, 다리야 협조를 해다오 주문을 외웠다. 다행히 에어컨은 꺼진 상태였고, 무엇보다 누군가 열어둔 창문이 아주 흡족했다. 처음 1km는 진짜 죽음의 구간이다. 숨이 차오르고, 다리는 무겁다. 당장 멈추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래도 참고 1km를 버티면 2km부터는 조금 더 속도를 올릴 수 있다. 그렇게 3km까지 또 살짝 그만 뛰고 싶은 마음이 막 올라오는데... 그걸 참고 4km에 진입하면 그때부터는 다리가 부쩍 가벼워지고 시간도 빨리 흘러가는 느낌이다. 속도를 더더 올려본다. 시간은 더 빨리 흘러간다. 와 진짜 상쾌하다. 땀이 줄줄 흐르고 가지고 간 손수건을 꺼내 눈으로 흘려내리는 땀을 닦아내며 달린다. 드디어 5km 지점까지 도달. 앞에 워밍업 하며 걸은 거리까지는 달려줘야 순수하게 달린 5km를 채우는 거니까 조금 더 달린다. 드디어 5km를 달렸는데, 조금 더 달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지만, 러닝을 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상 없이 달리는 것이라는 어떤 전문가의 말을 떠올리며 과감히 stop버튼을 눌렀다. 천천히 러닝 머신이 멈추자 와... 그래 이거지, 이 기분 때문에 달리는 거지!
거리 5.51km (초반에 걸었던 0.51m를 고려함)
시간 43:43
속도 7.57km/h
9월 13일
거리 5.01km
시간 38:10
속도 7.87km/h
9월 21일
거리 5.50km
시간 42.28
속도 7.78km/h
9월 25일
거리 4.00km
시간 31:16
속도 7.68km/h
*이날은 오전에 야외요가를 하며 수리야나마스카라 A동작을 무려 80번을 한 터라 다리가 후들거려 4km 지점에서 부상 방지를 위해 stop를 누를 수밖에 없었다!
9월 30일
거리 5.16km
시간 39:44
속도 7.80km/h
10월 1일
거리 5.41km
시간 43.02
속도 7.54km/h
이 정도의 '기록'을 이렇게 '기록'한다는 게 맞나? 싶다. 야외에서 10km, 20km씩 달리는 러너들에겐 이런 소박한 기록에 코웃음이 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겐 이런 기록들이 무척이나 소중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쉰을 지나며 오래전 서른 잔치가 끝났다던 시집의 제목이 귀엽기만 하다. 서른이 잔치가 끝나는 나이라면 마흔은? 쉰은? 시간이 화살처럼 흘러간다는 말이 가슴에 절절하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인생 길다며 제2의 인생을 준비하라는데, 난 아직 내 진로를 모르겠다. 이래 저래 마음은 바쁘고, 이제 중학생인 막내는 여태 사춘기라 엄마로서 종종 피가 거꾸로 솟구친다.
"너 진짜 이럴래? 이렇게 할래?"
"엄마가 진짜... 서운하다. 너무 서운해..."
참다 참다 결국 큰 소리 나고, 악귀가 들린 듯 마음속에 우울과 슬픔과 자괴감이 찾아온다.
며칠 전 큰 애 고등학교 때 만들어진 엄마 기도모임에 다녀왔다.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나보다 더 힘든 상황 속에서도 인내하는 대단한 엄마들이 있었다. (물론 밑도 끝도 없이 남편 자랑에, 그 치명적이라는 자식 자랑까지 늘어놓고 밥도 안 사고 자리를 떠나버린 누군가 때문에 기분이 상하긴 했지만) 많은 엄마들이 솔직하게 자신이 처한 상황과 고민을 내어놓았다. 모임의 특성상 주된 고민의 내용은 자녀 입시, 취업, 진로가 대부분이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내용들도 섞여 있었다. 가만히 듣다 보니 마흔에서 쉰, 엄마로 사는 중년 여성의 어깨가 이렇게 무거웠나? 싶다. 그 자리에 함께 한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들 대부분은 내가 어떻게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공통점도 있다. 자녀가, 남편이, 친정 부모가, 시부모가, 이 사회가, 어떤 상황이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져 일상이 무너지고, 급격히 살이 쪄 건강의 적신호가 켜졌다는 한 엄마에게 운동을 시작해 보는 게 어떠냐고 말해주고 싶었다. 일단 걷기부터 시작해 보라고, 1년 정도 꾸준히 걷고, 조금씩 달려보면 어떻겠냐고, 그게 힘들면 실내 자전거라도 하루에 10분씩, 점점 시간을 늘려보라고 11분, 12분... 그렇게 40분까지 늘려보면 어떻겠냐고. 하지만 난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걸 몰라서 살이 찌고, 건강이 악화된 건 아닐 것이다. 분명 스스로 결정하고 실천하는 순간이 반드시 올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구구절절하게 나열한 이 소박한 기록들에는 내 마음의 결정과 실천이 담겨 있기에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생각이 나면 늘 하던 일처럼 자연스럽게 운동복을 갈아입고, 양말을 신고, 물을 챙기고, 헬스장으로 간다. 그리고 달려보는 것. 이렇게 계속 달릴 수 있다면 1년 뒤 내 모습은 어떨까? 그렇다고 올림픽 금메달까지 도전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행복하게 달릴 수 있을 때까지 일단 달리다 보면 엄마로서 느끼는 자괴감도,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조금은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