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 요가하는 중년의 그녀
가을이 러닝 하기 딱 좋다! 말을 꺼내자마자 지난여름 그 뜨거운 열기가 살짝 그리워진다.
아침저녁으로 느껴지는 한기를 감당하기엔 내 몸이 아직 준비가 안 된 듯하다. 게다가 시원하자마자 시월이라니... 난 시월이 되면 기를 못 편다. 큰 애를 시월에 낳고 조리를 하면서 독한 감기에 걸려 고생을 엄청 했는데, 그 기억이 어디에 남아 있는 건지 하여간 시월이면 비슷하게 감기에 걸려 기침을 하면서 거의 한 달을 끙끙 앓았다. 함께 육아하는 엄마들과 출산에 대한 경험담을 나누며 이런 얘기를 꺼내면, 맞아요 맞아요! 나도 그래요! 출산한 달에 이상하게 몸이 아프더라고요! 공감하는 엄마들이 꽤 있었다. 의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은 아닐지라도 경험에 의한 가설 정도는 되는 모양이다.
개천절 아침, 곧 생애 첫 중간고사가 코 앞이지만 늦잠을 즐기고 있는 막내딸 방에 들어갔다.
"엄마가 어제 맛있는 베이글 사놨는데, 아침에 밥 말고, 샌드위치 어때?" 아이는 빵보다는 밥을 좋아하기 때문에 아침 식탁은 늘 빵과 밥 두 가지로 준비하는데, 개천절이라 학교도 가지 않으니 빵으로 통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종종 이런 시도를 하는데, 아이는 고집스럽게 밥을 외쳐왔다. 그런데, "샌드위치... 는 좋은데 베이글 말고 식빵으로 해줘." 여기서 그냥 밥을 준다고 했어도 됐는데, 나는 샌드위치를 선택했다는 것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고 말았다. 식빵을 사러 밖으로 나갔다. 기분 좋게 나갔는데... 아침의 한기가 몸속으로 훅 쳐들어온다. 내장부터 덜덜 떨리는 이 느낌... 아! 시월이구나. 그렇게 아침을 먹고 나니 갑자기 졸음이 몰려와 정신을 못 차리겠는 거다. 식탁도 치우지 못하고 그대로 소파에 누웠는데, 이불을 머리까지 덮어써도 팔다리가 서늘하다. 그렇게 내리 두 시간을 자고 말았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따듯한 햇살에 체온이 올라가며 한기가 사라지고 이제 좀 살겠다 싶어 져 몸을 일으키니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11시가 좀 지났는데, 아이는 벌써 점심을 달라고 난리, 남편은 아이 앞에 앉아 그만 딴짓하고 시험공부 좀 하라고 난리...
"나 잠깐 뛰고 올게."
난리통 속에 귀한 시간이 막 흘러간다. 나는 급히 운동복을 입고, 양말을 신고, 물을 챙긴 다음 에어팟을 귀에 꽂았다. 헬스장에는 이미 한 명의 러너가 뛰다, 달리다를 반복하고 있다. 나는 잠깐 걸으며 워밍업을 하는데 뭔가 이상하다. 내 휴대폰 어디있지? 음악은 나오는데? 아! 생각해 보니 신발을 갈아 신으면서 옆에 둔 휴대폰을 그냥 거기 둔 채로 러닝 머신에 올라온 것이다. 이 놈의 정신머리... 러닝머신에서 내려가 휴대폰을 챙기고 다시 올라오니 암튼 벨트에 감지되는 것이 없다며 대기 상태가 길게 이어진다. 아이고 속 터져, 나는 그냥 바로 옆 러닝 머신으로 올라가 다시 세팅을 하고 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까운 시간이 얼마나 소요된 건가? 배고프다고 난리 치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게 딱 배고프다! 의 의미는 아니고, 시험공부 그만하고 밥을 먹고 싶다는 외침인데, 그냥 순수하게 배 고픈 상황보다 더 집요해지는 경향이 있어서 주변인의 신경증을 반드시 유발한다. 현재 주변인은 남편. 솔직히 예수님이 오셔도 이건 감당 못하신다! 우리 집이 지옥으로 가느냐 마느냐 갈림길에 놓여 있는 것이다. 난 러닝 머신의 속도를 조금 올려보았다. 8.0으로. 평소엔 7.0 정도로 달리다가 점점 올려서 마지막 1km 정도만 9.0로 달리며 마무리를 하는데, 그렇게 하다간 12시 반은 돼야 집에 갈 수 있을 거 같은 거다. 그렇다고 '5km 달리기' 루틴을 깨기는 싫고, 일단 온 힘을 다해 달리다가 도저히 안되면 멈추고 집에 가자! 마음을 먹고 속도를 올려 달리기 시작했다. 12시가 지나자 헬스장이 고요하다.
나 혼자 뛰고 있다. 이러다 갑자기 심장이 멈추면 큰 일인데, 이런저런 잡념과 당장 그만 달리고 싶다는 열망이 나를 감쌌다. 하지만 이렇게 멈추면 뇌가 이만큼만 달려도 된다는 나쁜 학습을 하게 된다는 뇌과학 전문가의 말도 떠오르며, 그래! 여기서 멈출 수는 없지, 밥도 중요하지만 일단 '나의 러닝'을 마무리하기로 마음을 딱 먹었다. 나의 속도와 비트가 딱 맞는 음악을 골라 몸을 맡겼다. 그리고 팔을 앞 뒤로 강하게 휘저으니, 낯선 힘이 찾아와 나를 돕는다. 그렇게 5km 도달! 기록을 보니 34분 38초. 5km를 30분에 달리는 것이 권장 기록이라고 들었는데, 그럼 나 거의 근접한 건가? 하지만 권장 기록이 이렇게 힘든 것이라니... 나 또 이렇게 달리긴 쉽지 않을 거 같은데... 뭐 한 번의 기록이라도 의미는 있는 거고, 더 중요한 건 밥을 차려 가정의 평화를 지켜야 한다는 나의 이 강렬한 책임감만큼은 인정을 좀 받고 싶은데, 자꾸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것도 정신건강 면에서는 그렇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니, 집어치우자! 일단 중요한 건, 여차저차해서 신기록이 하나 나왔다는 거, 러닝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