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야외 요가 후기
드디어 야외요가를 하기로 한 날 아침이 밝았다.
평소보다 20분 정도 일찍 모여, 개인용 돗자리를 깔고 짐룸으로 가 요가매트를 챙겼다.
장소는 내가 살고 있는 동 뒤편의 작은 정원. 바람과 햇살도 우리 요가반을 위해 세팅을 한 듯 완벽했다.
참석한 인원은 강사님을 포함해 총 여섯 명. 처음이라 땅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매트를 올려놓는 과정은 우왕좌왕했지만, 일단 위치가 정해지고 모두 매트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으니 갑자기 모든 것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명상을 시작하는 싱잉볼 소리에 마음속이 고요해지고, 바람 소리, 새소리...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 작은 소리들이 내 안에 가득 찼다. 바람은 지나가는 건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바람이 내 몸을 감싸고, 감기며 오래 머물렀다. 오전 9시의 햇살은 상냥했다.
" 오늘 요가는 지루한 것을 계속 반복하는 걸로 준비했어요,
지루한 것을 반복하면서도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거든요! 우리의 일상도 늘 똑같고 지루할 수 있는데
그런 일상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길 바랍니다."
강습을 시작하는 강사님의 말을 들으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파트 커뮤니티 오전 요가반 우리 회원들의 삶이 전쟁터를 누비는 종군기자 같을 순 없을 것이다.
우리는 주부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가족의 일상이 돌아갈 수 있도록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밥을 짓고... 그 일상은 당연히 스펙터클 할리 없고, 스펙터클 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 지루한 일상 속 새로움이라고
하면 로또 당첨 같은 대단한 것은 당연히 아닐 테고, 그저 날 미소 짓게 만드는 어떤 순간들일 것이다.
혼돈의 빨래 끝, 짝을 잃어버린 양말에 제 짝을 찾아주는 순간이나,
갑자기 내린 소나기 끝에 창문으로 들어오는 풀 비린내 같은 것.
우리가 그런 새로움을 발견하듯 요가를 즐기길 바라는 강사님의 마음이 나에게 전해졌다.
대부분의 동작은 천천히 긴 호흡과 함께 진행됐다. 늘 바삐 움직이며 일상의 숙제를 해치우다 보니
그런 느린 흐름이 낯설어, 아주 오래 날 지배한 시간의 개념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1시간 정도 흘렀을 텐데, 이상하게 다른 시간 속에 잠깐 존재한 듯한 했다.
그래도 현실감 있었던 순간은 나무 옆에서 나무서기를 할 때였다. 이상하게 자꾸 웃음이 나왔다.
갑자기 머릿속에 딴생각이 스쳐 지나가면 아무리 애를 써도 몸이 흔들리고 중심을 잃어버렸다.
바보처럼 몸이 기우뚱하는 것이 너무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며 왠지 위로가 됐다. 나는 인간이니,
나무 같은 순 없는 것이다. 저렇게 꼼짝도 않고 꼿꼿하게 서있는 건 나무니까 가능한 것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슬픔이 밀려왔다.
내 시선이 '그곳'을 향했다. 그곳, 우리가 얼마 전 야외요가 장소를 답사하며 강사님의 매트는 어느 쪽에 깔고, 우리 매트는 어느 쪽에 깔지를 논의하며 웃고, 떠들었던 바로 그날, 그곳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아주 슬픈 일이 일어났...다.
아파트는 살기 편리한 주거 형태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꽤 무서운 지점이 있다.
높은 곳은 위험하다. 아주 쉽게 갑자기 위험해질 수 있다. 이 아파트 단지에 들어온 지 13년,
사정을 알 수 없는 몇 건의 투신에 의한 죽음을 소문으로 접하며 두려움과 슬픔을 느꼈다.
왠지 뉴스로 접하는 것과는 다르게 다가왔다. 좀 더 가깝게 느껴져 마음이 더 힘들었다.
그리고 그날, 우리가 많이 웃으며 대화를 나누다 헤어져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얼마 후,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요란했었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무슨 싸움이 벌어진 건가? 했다.
5층인 우리 집 베란다 창문 아래에서 119 구급차 대원이 바쁘게 움직일 때도 그런 일은 생각도 못했다.
누군가 많이 다쳤거나, 싸움이 났거나 뭐 그 정도의 상황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창문을 쾅 닫고 소란에서 벗어나 평범한 일상을 즐겼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 동 1층에 거주하던 우리 요가반 OO님을 통해 그 사건이 우울감을 견디지 못한
젊은 여성의 투신...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딸이었던 젊은 여성의 투신.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리며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딸이 어릴 땐... 인형놀이를 하는 것 같다. 예쁜 공주 드레스, 리본핀, 무지갯빛 찬란한 신발... 그런 딸이
사춘기가 되면 확 낯설어진다. 엄마는 인형놀이하던 가락이 남아 혼도 막 내고, 잔소리도 막 한다.
그러다가 아이가 성인이 되면 깨닫게 된다. 딸이 함부로 손댈 수 없는 도자기 같은 존재가 됐다는 걸.
그리고 세상은 20대 여성에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번 여름, 난 한껏 예민해진 도자기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
취업을 위해 달려온 큰 딸에게 번아웃이 왔기 때문이다.
잠깐 그러다 말겠거니 했는데, 생각보다 오래 힘들어했다.
어떤 날은 딸의 힘든 마음을 다 받아주기도 했지만, 나의 인내심이 바닥을 칠 땐 어쩔 수 없이 불협화음.
그나마 아침 요가 덕분에 인내할 수 있었지만, 엄마로서 내가 더 참아야 했던 순간이 몇 차례 있었다.
내가 후회하는 바로 그 지점, 내 눈물의 이유다. 딸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 그리고 어떤 엄마...
슬픔이 온몸에 가득 차 끝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을 중년의 그녀, 그녀를 어떡하나? 하는 생각까지.
"옴 샨티!"
잠깐의 명상을 마치고, 서로의 평화를 기원하며 우리의 첫 야외요가를 마무리했다.
말은 안 했지만 우리는 모두 그 '딸'을 한 번은 생각했을 것이다. 작은 한숨과 함께...
그리고, 우리의 일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된다.
바람과 새소리가 이런 것이었냐고 웃고, 왁자지껄 떠들며
지루한 일상 속에서 발견한 이 새로움에 감격했다.
찬바람 불기 전 또 한 번의 야외요가를 약속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그래 이런 게 행복이지, 무엇이 행복인가?
나의 도자기에게 말해주고 싶다.
"대단한 그 무엇이 되지 않아도 괜찮아.
금자탑보다 소중한 건, 바람과 새소리...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작은 행복, 새로움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