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식사를 하고 있고, 둘 다 밥을 반공기만 먹는다. (나는 한 공기 다 먹지만^^)
오른편에 앉은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니 '나는 적은 양으로도 충분하고, 만족해. 그리고 감사해.'였다. 그리고 왼편에 앉은 사람은 '많이 먹으면 더부룩하고 건강에 좋지 않으니 이 정도만 먹어야 해.'였다.
같은 행동이지만 어떤 마음에서 출발하느냐에 따라 이 두 사람은 삶 전체가 완전히 다를 것이다.
아마 오른편에 앉아서 식사했던 사람은 기분 좋은 일이 훨씬 많을 것이고, 얼굴에는 늘 미소가 가득할 것 같다. 삶의 모든 면에서 이렇게 살다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이 더 환해지고 빛이 날 것 같기도 하다.
왼편에 앉아 식사했던 사람은 마음속으로 들어가면 두려움이 있을 것 같다. 매일 두세 번이나 먹는 식사 때마다 직은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의 삶은 전반적으로 더 큰 두려움과 걱정에 휩싸여 있을지도 모른다.
나폴레온 힐은 악마가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기 위해 쓰는 가장 교묘한 기술 중 하나가 바로 두려움이라고 말했다. 가난에 대한 두려움, 비판의 두려움, 질병의 두려움, 실연의 두려움, 늙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죽음의 두려움 등을 언급했다. 실체가 없는 두려움은 삶 전체를 갉아먹는다. 사실 두려움이란 없는 것이고 마음이 만들어 낸 허상에 불과한데, 그 안에 쌓여있는 사람은 두려움에 지배를 당하고 만다.
또 다른 예로 나란히 앉아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월급을 받는 두 직장인이 있다고 하자. 비슷한 액수를 저축한다고 할 때 둘 중 한 명은 언제까지 다닐지 모르는 직장생활을 두려워하고, 돈을 쓰는 것이 무서워 대부분의 월급을 저축한다. 당연히 직장생활뿐 삶을 즐길 여유가 없을 것이다. 인색한 삶을 살지도 모른다. 다른 한 명은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내가 이 목표에 도달하기까지 열심히 돈을 모아서 결국에는 내가 꼭 하고 싶은 일을 할 테니 조금만 참자라고 생각한다. 누가 더 행복한 부자가 될까?
어느 순간부터 말과 행동의 '원의'가 중요하게 다가왔다.
나는 예전에는 '내가 너에게 5를 주었으니 너도 나에게 5를 줘야 해.'라는 생각으로 준 적이 많았던 것 같다. 아마 4를 주고 6을 바랐던 적도 많지 않았을까?
겉보기에는 똑같이 주는 행위일지라도 순수한 마음으로 주는 것은 참 아름답게 느껴진다. 성경에 되돌려 받을 수 없는 가난한 이들에게 주라는 말씀이 생각난다.
그렇다면 순수한 마음으로 주는 것이 사랑에서 비롯된다면, 되받으려고 주는 것은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똑같이 주는 행위이지만 그 동기의 차이는 극명하다.
미국의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은 '보상의 법칙'에 대해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들은 보상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어느 한 곳이 비면 그 자리는 다른 것으로 메워진다. 모든 고통과 희생은 보상을 받고, 모든 은혜는 되돌아온다."라고 했다.
<나폴레온 힐의 '결국은 당신은 이길것이다' 중에서>
질병을 두려워하며 소식하는 것은 건강염려증이며, 주려고 받는 것은 거래이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화려하게 꾸미는 것은 허영이며, 남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칭찬하는 것은 아첨이다.
같은 일을 해도 남에게 지기 싫어서 열심히 하는 것과 즐기며 하는 것은 종국에 어마어마한 차이가 날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내가 이 말과 행동을 어떤 동기에서 하는가?'이다.
이젠 메이크업을 할 때 잡티를 가리기 위해서 하지 말고, 나를 더 표현하기 위해서 메이크업을 해보자.
건강을 걱정하며 운동하지 말고, 한층 더 탄탄하고 활기찬 스스로의 모습을 생각하며 운동하자.
남들에게 뒤쳐질까 봐 독서하지 말고, 내가 더 성장하기 위해 즐기며 독서하자.
하고 싶은 말이나 행동이 있을 때, 나와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담겼다면 눈치 볼 것 없이 행동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