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으로 마주한 현실, 베니스 교환일기 EP02]
알다시피 베니스는 섬이다.
비행기에서 내려 베니스 본섬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바포레토'라고 불리는 배 버스를 타야 한다. 각자 나름의 기대감으로 베니스에 도착한 나를 포함한 4명의 교환학생들은 양손에 반년 치의 짐을 들고 바포레토에 올라탔다. 바포레토 위에서 만난 베니스의 첫인상은 말 그대로 새로운 세상이었다. 내 머릿속에는 천공의 성 라퓨타가 떠올랐다. 물론 하늘 위는 아니었지만 물 위에 둥둥 뜬 알록달록한 건물이며 경적소리 없이 고요한 거리, 바포레토를 느긋하게 지나쳐 가는 곤돌라까지. 역시 베니스에 오길 잘했다 생각하며, 저 알록달록한 집들 중 나의 집은 어디일까 상상했다. 선선한 바람과 가끔씩 튀어 오르는 물방울들도 기분을 한껏 달궈 주었다.
본섬에 도착해 베니스 본섬에 발을 내딛으며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여기가 내가 반년을 살게 될 곳이구나, 괜한 감상에 빠져 주변을 쓱 둘러봤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캐리어를 끌고 예약해 둔 숙소에 갈 참이었다.
"덜그럭! 덜그럭!"
캐리어를 끌고 베니스 섬 안쪽으로 들어서는 순간, 손끝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들썩이는 캐리어가 내 신경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미처 보지 못했던 게 눈에 들어왔다. 바닥. 베니스의 바닥에는 돌이 박혀 있었다. 그것도 울퉁불퉁한 돌. 엉성하게 모양을 낸 돌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바닥에 박혀 있었다. 그 정갈하게 울퉁불퉁한 바닥에 캐리어가 일정한 간격으로 부딪히며 덜컹댔던 것이다. 맞다. 나는 베니스의 곤돌라와 운하, 알록달록한 건물들만 생각했지, 베니스의 바닥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사실 어떤 사람이 특정 나라나 도시를 떠올릴 때 그곳의 바닥에 대해 생각해 보겠는가? 여행 계획 세울 때를 떠올려 보라. 그 나라의 바닥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는가? 물론 나의 경우는 더 세심한 조사가 필요했다. 난 여행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온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낭만 하나만 믿고 비행기를 탄 내가 베니스의 바닥에 대해서 알아봤을 리는 만무했다.
나와 내 교환학생 친구들은 그 돌바닥에서 덜컹거리는 캐리어를 끌며 역에서 10분 거리의 숙소까지 걸어가야만 했다. 4개의 캐리어가 돌바닥에 덜컹거리며 내는 우렁찬 소리란, 베니스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 베니스에 교환학생 왔어요'하고 광고하는 꼴이었다. 시작부터 우리는 스스로 이방인을 자처했던 것이다. 베니스에 살고자 왔지만 베니스에 녹아들 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여행객과 현지인 그 사이 어디메의 애매한 존재. 그게 바로 베니스에 첫발을 내딛는 나의 모습이었다. 내가 베니스에서 만난 첫 번째 현실, 정갈하게 울퉁불퉁한 바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