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어디로 향해서 걷고 있는가
리차드 롱
오늘 당신은 얼마나 걷고 또 어디로 향했는가? 사실 우리는 일부러 걷기 위해서 외부활동을 하는 경우가 그리 흔하지 않다. 이를 사람들은 게으르다고 표현하지만, 바쁜 생활과 불규칙한 패턴의 일상으로 디지털공간과 한 몸으로 지내다보니 좀처럼 우리 자신을 위해서 시간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생각보다도 자신을 위해서 생활을 하는 사람은 걷기 위해서 외출을 하기보다는 SNS를 소비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다. 걷는 다는 것의 의미. 무엇이 그렇게 중요한가? 누구나 걷는 것보다는, 앉아서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한다. 우리는 길을 걸어서 목적지로 향하거나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기 위해서. 잠시 걷는 것 외에 스스로를 위한 걷기는 시간 조차 내는 것을 어려워한다.
서울지역에는 많은 사람들이 청계천 길을 따라서 혹은 꽃이 핀 나무 사이를 따라서 길을 걷는다. 어디로 향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목적지는 앞을 전진하고 있는 어느 지점일 것이다. 그들이 걷는 이유는 날이 너무 좋아서 혹은 건강을 위해서 오늘 하루를 열심히 걷는다. 당신이라면 어느 쪽인가? 걷기의 미학이 있다면, 리처드 롱(Richard Long, 1945~)이 아닐까? 크리스토 자바체프와 함께 대지미술가로 알려진 롱의 도보는 상상 그이상의 평온함과 따듯한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잔잔한 호수 속에 돌을 던지는 크리스토, 이에 반해서 롱은 자신에게 더욱 몰입할 수 있는 즐거움을 준다.
평온한 잔디 위에 길을 만들어 준 롱은 크리스토와는 다른 평온하고 고요한 상태에 이르게 하여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게 하는 길을 내어준다. 롱은 1967년 조각, 드로잉, 사진, 텍스트 작업을 바탕으로 자연풍경에서의 개인의 경험을 토대로 관련된 작업을 진행하였다. 롱의 재료는 흙, 진흙, 바위, 돌 그리고 자연 속에 흔히 발견되는 것들이 모두 대상이 되었다. 인공갤러리에서 1993년 롱의 전시가 한국에서 처음 열린 적이 있었는데, 당시 그의 작품은 포천 화강암으로 원을 그린 작업을 진행했었다. 사실. 롱은 1964년 클리프턴다운(Clifton Downs)에서 만든 <눈덩어리 트랙 A Snowball Track>(1964)을 발표 이후로 걷기와 도보에 의미를 두기 시작했다. 눈덩이를 잔디에 굴려가면서 이동경로를 확보하면 만들어진 흔적에 그의 여정은 시작됐다. 실제, 어린 시절 걷기애호가였던 부모 밑에서 생활을 한 롱이기에, 자연을 벗삼아 생활하는 일이 대다수였으며, 그의 도보작업은 우연이 아니었다.
롱의 작업은 누군가를 의식하고 자아를 연출하는 행위가 아닌 오로지 자신을 향해 있다. 산책을 즐겼던 롱은 1960 년대 중반부터는 본격적으로 사하라 사막, 호주, 아이슬란드와 영국 브리스톨에 있는 그의 집 근처에서 도보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1967년 워털루 역에서 기차를 타고 시골로 가, 기차에서 본 잔디밭까지 걸어간다. 여기서 롱은 걸어 가면서 자신의 도보의 흔적을 나타낼 수 있게 줄을 긋기 시작한다. 이게 바로 <도보로 만든 선 A Line Made by Walking>(1967)이다. 롱은 자신이 걸은 자연풍경을 인식하고 기록한 방법 중에 하나였던 줄긋기를 통해서 자신의 걷기의 흔적을 기록했다. 롱은 흔적. 표시. 기록. 세 단계의 작업과정을 함축적으로 보여준 흑백사진을 남겼다.
롱에게 있어서, 도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행위였지만, 그에게 걷는 것은 단순히 지나온 과거의 흔적이 아니었다. <볼리비아의 선 A LIine in Bolivia>(1981)역시도 <도보로 만든 선>(1967)과는 다르지만, 바위와 암석들이 가득한 땅위에 걷기의 흔적을 기록했다. 어떤 대지의 풍경보다도 아름다운 자연이다. 하늘과 땅의 수평적 배치와 구성이 <볼리비아의 선>(1981)에서 더욱 광활하면서도 자연의 숭고함이 경험되는 현장을 만들었다. 직선을 아름답게 생각했던 롱에게 우연적 찰나와 그가 인위적으로 만든 도보의 흔적이 또 다른 자연을 만든다.
그리고 <마할라쉬미 언덕 Mahalakshmi Hill Line>(2003)에서 롱은 약 100m의 휘어진 경로로 곡식의 겉껍질이 땅에서 드러나게 도보한 흔적을 남겼다. 이곳에서 롱은 땅위에 자연스럽게 곡식이 익어가는 자연의 기적을 그대로 남겨준다. 이에 반해서 <도로-돌-선 Road Stone Line>(2010)은 도로 위에 일정한 간격에 맞추어서 곡선에 따라 돌을 배치시켰다. 세계 곳곳을 다녔던 롱은 자신이 방문한 곳에서 수집한 돌을 가지고 선 작업을 진행하였는데, 그 중에 하나가 <도로-돌-선>(2010)이다. 끝이 없어 보이는 도로 위에 지나가는 오토바이가 얼마나 긴 거리 까지 돌을 위치시켰는지 알려준다.
롱은 일시적으로 도보를 작업하기 위해서 곳곳에 보이는 자연의 재료들을 그대로 들고 와서 사용한다. 롱은 크리스토와 같이 인위적인 자원과 기술, 인력을 동원하여 건축적 규모의 도보를 만들지 않는다. 철저히 고독한 도보였으며.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몇 시간 혹은 며칠이 걸렸다. 롱에게는 작품에 필요한 비용. 작업하는 장소로의 이동. 그곳에서 혼자 지내는데 드는 요금 정도가 전부였다. 그리고 롱의 또 다른 작업은 <보름달 원형 Full Moon Circle>(2003)과 같이 돌과 나무토막 등을 원, 직선의 형태로 배치하기도 한다. <보름달 원형>(2003)은 런던 리슨 갤러리 (Lisson Gallery)에서 설치됐으며, 평면 위에 그려지는 동그라미의 형태에 의미를 부여한 롱에게, 돌은 재료가 되었고, 제목처럼 보름달의 원형을 표현하고자 한 그의 의도가 엿 보인다. 이 <보름달 원형>(2003)은 주변 자연풍경과 어울러져 또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되었다.
롱은 자연에서 걷거나 자연물과 마주할 때 숭고하고 심오한 감정을 느꼈다. 언제나 그랬듯이 롱의 작업의 패턴은 반복적이면서. 일정한 간격 안에서. 수평적 배치와 구도가 자연풍경과 조화롭게 이뤄진다. <미데이 무에친 선 Midday Muezzin Line>(2006)에서도 역시 그랬다. 하늘과 땅의 정확한 수평선 그리고 땅 위에 남겨진 도보의 흔적은 끝이 없는 선과 가야하는 곳의 방향. 그리고 누군가 이미 지나간 과거의 기록이 한 데 어울러져 모인 평화로운 장소가 되어 우리 앞에 있다. 그리고 이 자연으로부터. 풍경, 바람, 온도가 자신의 체온과 맞아 떨어질 때, 대자연의 힘을 경험하게 된다. 근래에도 롱은 여전히 우리에게 자연의 숭고함을 전해준다.
런던 브리스톨의 봄, <백일몽 선 Daydreaming Line>(2020)이다. 이런 곳이 실제 존재할까? 이 꽃밭에 도보가 기록되었다. 계절에 따라 자연환경은 변한다. 소멸되거나 변형되면서 지속적인 순환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그 찰나를 롱은 놓치지 않았다.
롱은 이렇게 세계 곳곳의 자연을 돌아다니며 도보를 하고 그 과정에서 조각을 만들거나 흔적을 남겼다. 롱은 걷는 행위로부터 오는 신체적 경험이 온전히 자신을 향해있고, 자연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감각에 집중한다. 좀 더 가벼워지고 자신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 롱은 자신이 한 땀 한 땀 만들어낸 도보의 흔적으로부터. 도시에서 밀려오는 불안과 고통을 잠시 내려놓게 한다.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우리에게도 자연으로부터 얻게 되는 힘과 에너지를 경험하기를 바랬을지 모른다. 자신을 위해서 잠시, 삶을 비워내고, 자연과 마주하는 시간에 머물러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