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른아홉이다.
어느 날 피부는 탄력이 하나도 없고 잔주름에 기미가 잔뜩 끼어 있는 창백한 얼굴을 보고
“코로나 때문에 화장을 안 해서 그렇지....”
라고 생각했다.
흔히 말하는 풀 메이크업을 한지가 1년도 넘었다. 늘 선크림 혹은 약간의 파운데이션 기능이 있는 선크림에 눈썹과 틴트를 살짝 바르는 게 일상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스크에 화장이 잔뜩 묻는 게 너무 싫었고, 얼굴에 마스크 자국이 너무 적나라하게 났으며, 외출 횟수가 현저히 줄었기 때문에 굳이 화장을 할 일이 별로 없었다.
하긴, 피부의 근본적인 원인을 화장으로 커버하려고 한 것 자체가 문제긴 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 흰머리가 하나 둘 생기더니, 요즘은 한 달에 한번 염색을 해도 흰머리가 금세 쑥쑥 자란다. 햇볕에 비춰보면 내 머리카락은 원래 흑발에 금발과 은발이 뒤섞여 퍽 난감한 모습이다.
우리 텃밭에 뿌린 씨앗들이 이렇게 쑥쑥 커주면 좋으련만, 문득 박명수가 뿌리던 흑채가 생각나는 요즘이다.
20대 때는 밤새도록 놀고 그다음 날 바로 출근하는 것이 거뜬했는데 요즘은 외출을 조금만 하고 돌아와도 피곤함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냥 눕고 싶고 손가락 까딱 할 기운이 없다.
특히 집에만 있는 날도 오후 다섯 시가 넘어가면 피곤함이 기다렸다는 듯이 밀려온다. 누워있으면 천장이, 하늘이 내려와 나를 짓누르는 느낌이다.
두통이 잦아졌다. 남편은 내가 코로나 등으로 안 그래도 예민한 사람이 더 예민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두통이 심한 내가, 하루에 커피를 세잔 이상 안 마시면 기운이 없다. 코로나로 인해 유일하게 소비가 많아진 게 커피다. 원두와 캡슐이 금방 동이 났다. 커피와 핸드드립 용품을 사느라 근 1-2년 사이 소비가 많아진 것 같다.
많이 피곤한 날은 미열이 난다. 증상이 그리 오래 가진 않지만, 이 때문에 코로나 검사를 받은 적도 있었다. 미열이 날 때는 어김없이 양 목과 골반통이 수반된다.
다이어트를 해도 요즘은 잘 빠지지도 않는다.
저녁을 늘 샐러드를 만들어 먹는데, 예전에는 그냥 한 끼만 굶어도 쑥쑥 빠지던 내 체중계는, 요즘은 통 반응이 없다. 그나마 유지하면 본전일 정도로.
그렇다고 뭘 잘 먹지도 못한다. 고기 같이 헤비 한 음식을 먹으면 소화도 잘 안된다. 고기로 한 끼를 배부르게 먹으면 한 이틀은 굶어도 배가 안 고플 것 같다.
밥은 굶어도 영양제는 절대 굶지 않는다.
어떤 효과가 절실히 느껴져서라기 보다는, 그냥 안 먹으면 안 될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다.
주로 종합비타민과 유산균, 루테인, 새싹보리 등을 매일 챙겨 먹는다. 마트나 코스트코를 갈 때마다 영양제코너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뭘 더 먹어야 할까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어느 날, 나는 남편과 아이와 한강으로 자전거 라이딩을 나갔다. 미세먼지 하나 없는, 맑은 주말 날씨가 얼마만인지.. 나는 인적이 드문 어떤 작은 풀밭에 돗자리를 깔고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참을 누워 하늘만 바라봤다. 어릴 때는 사람이 바글바글한 쇼핑몰이나 이태원, 강남 같은 번화가에 가는 게 그렇게 좋더니, 이제는 강과 바다와 산과... 자연을 바라보는 게 좋다. 아무것도 안 하고 바람소리와 반짝이는 강을 보고 있자니 이 순간을 저장해놓았다가 나중에 우울하거나 힘들 때 사진처럼 꺼내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부터 알 수 없는 두통이 밀려왔다.
약을 먹었는데도 좀처럼 낫지를 않았다. 두통이 심하니 속이 좋지 않았다.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저녁 먹은 모든 것을 토해냈다. 위액이 나올 정도였다.
나는 두통약 한 알과 한방 소화제 한알을 더 먹고 나서야 잠이 들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모든 통증은 사라져 있었다. 그저 기운이 좀 없을 뿐. 남편은 그런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다가 병원에 가보라고 권유하고는 출근을 했다.
어디가 안 좋은 건가. 나도 내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집 앞에 규모가 조금 큰 내과를 가보기로 했다.
모든 증상을 말하고 간단한 피검사와 검진을 했다. 요즘은 피검사로 웬만한 것들을 알 수 있으니, 결과를 보고 추가 검사를 할 게 있으면 해 보자고 하신다.
결과는 3일 만에 나왔고, 결과를 걱정하며 덜덜 떨고 있는 나를 보며 의사는 말했다.
“빈혈이 좀 있으시네요. 심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철분제는 드셔야 할 것 같고요....
다른 건 큰 이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네? 그래도 제가 몸이 예전 같지 않은데요....”
의사는 씨익 웃었다.
“ 그거, 늙는다고 그래요. 늙느라 그렇다고요.”
늙는다고?
내가?
그래도 아직 30대인데 내가?
의사가 말했다(참고로 의사도 여성분이셨다.)
“ 여자는 보통 30대 중반부터 노화가 시작된다고 해요. 출산의 경험이 있으면 더 그렇죠. 어디가 크게 이상이 있어서 몸이 안 좋다기보다는, 노화에 코로나가 겹쳐 더 힘드셨을 것 같아요. 저도 그랬거든요. 저는 40대인데, 저도 30대 후반부터 그런 증상들이 있었어요. 뒤돌아 생각해보니 늙느라 그런 거였죠. 이제 몸을 잘 돌봐야 할 시기가 온 거예요. 가족이 우선이었다면 이제는 본인의 몸과 건강을 잘 돌봐주세요. 나중에 갱년기가 오면 더 심할 텐데요.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라도 잘 돌보고 잘 챙겨 먹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내가 늙었다니,
늙고 있다니,
늙는다니..............
막연한 생각은 있었지만, 이렇게 면전에서 듣다니.
얼떨떨하고 기분이 이상했다.
나도 “늙는” 것을 경험하고 걱정하는 시기가 오는구나 싶어서, 신기하기도 하고 울적했다고 해야 하나.
하긴, 내 딸이 저렇게 자랐는데. 아이가 자라는 동안 나도 자랐겠지.
몸무게에 집착하지 않고, 잘 챙겨 먹고 조급해말고 마음을 푹 내려놓는 습관을 가져야 할 나이. 그 당연한 지혜와 마음가짐을 병원에 가서 배웠다.
얼마 전 “서복”을 봤다. 무한한 생명을 가진 서복이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꽤 무거웠다. 인간은 죽음보다 죽는다는 “사실”을 두려워하는 존재라지. 그런 의미에서 늙는다는 “사실”도 그런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늙는다는 것,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지.
하긴, 세상 모든 이에게 유일하게 공평하게 주어진 게 “나이”라고 하지 않나. 나를 더 아끼고 더 사랑해 줄 때가 온 거라고 생각하니 어쩐지 덜 섭섭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