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 거야
고3, 복도에 커피 자판기가 한 대 있었다.
다른 학년 복도에는 없었다. 오직 고3 이과 1층, 문과 1층에만 설치되어 있었다. 선생님들은 우리가 아직 어린데 커피는 몸에 좋지 않다며, 코코아나 율무차를 마시기를 권장하셨지만 그들도 이미 알고 있었다.
0교시부터 오후 10시까지의 야자와 수업을 해내려면 커피가 필요했다는 것을. 그 당시에는 박카스 이외의 에너지 음료가 없었기 때문에, 0교시 후 첫 쉬는 시간에는 자판기 앞에 늘 긴 줄이 서 있었다. 모두 믹스커피를 마시려는 학생들이었다. 물론 그 줄 가운데에는 나도 있었다.
커피 한잔의 가격은 200원. 조금 쓴 맛의 믹스커피는 150원이었다. 나는 200원짜리가 마시고 싶었지만 150원짜리를 마시는 날이 더 많았다.
커피는 참으로 신기한 음료였다. 아침에 겨우 일어나 지옥 같은 버스를 타고 높고 높은 언덕을 달려 학교에 들어가면 솔직히 그날의 에너지는 이미 다 쓴 거였다.
지각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지각을 하게 되면 담임 선생님은 복도 한 바퀴를 오리걸음을 시켰다. 고3은 더 가혹하게 시켰다. 아마 정신교육의 목적이셨을 것이다. 그래서 오리걸음까지 하고 나면 솔직히 그날의 공부는 거의 망친 거다. 너무 피곤한데 다리까지 마비되는 느낌이었으므로, 나는 한 번 경험한 이후 절대로 지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아침 시간은 늘 전쟁이었다. 쓰디쓴, 무슨 맛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나는 커피 한 모금이 늘 절실했다.
내가 칠판인지 칠판이 나인지 모를 비몽사몽 한 0교시를 지나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면, 정신이 대체로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 물론 커피는 너무나도 썼다. 우유랑 설탕도 들어가 있어 꽤 달달했음에도 도저히 무슨 맛인지 이해를 하지 못한 채 커피를 삼켰다. 그냥 한약 같은 느낌으로 삼켰다.
“ 야, 이거 도대체 무슨 맛이냐? 어른들은 무슨 맛으로 이걸 먹나 몰라.”
“그러게. 우리 엄마도 집에 가면 맨날 믹스커피를 이만큼 쌓아놓고 마시던데. 잠 깨려고 마시는 거 말고는 아무 맛도 없어.”
그래도 매일 아침 그렇게 커피를 마시는 습관을 들여서 그런지, 각성은 잘 되는 편이었고, 그래서 수능 당일에도 나는 자판기 커피를 마시면서 들어갔다.
대학을 들어가고 화려한(?) 20대 때는 주로 휘핑이 가득한 달콤한 커피를 마셨다. 특히 회사 앞의 바닐라라테를 아침에 마시면 천년의 분노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커피는 여전히 썼지만 휘핑크림과 바닐라 시럽 덕분에 달콤했다.
30대가 되니, 특히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고 나니 커피는 카페에 앉아 마실 시간도 없다. 내가 사 마시는 커피는 99%가 테이크 아웃이다. 커피는 대부분 아메리카노, 아니면 라테를 마신다. 물론 시럽은 넣지 않는다.
사이즈는 아이스의 경우 무조건 벤티. 그것도 받자마자 전투적으로 마신다. 맛이고 뭐고 느낄 시간도 없다.
어느 날, 아이가 피아노 수업을 들어가고 학원 옆 카페에 들어가 잠깐 앉아있었다.
커피가 나왔고, 숨도 안 쉬고 들이켰다. 몸속에 멈춘 피가 크게 도는 느낌이었다. 머릿속에 파도가 치는 느낌. 나는 잠시 숨을 크게 내쉬었다.
커피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커피가 더 이상 쓰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의 맛이 나는 이제 더 이상 쓰지 않다.
시원하고, 담백하다. 고소하고, 굵직하다. 깊고, 상쾌하다. 가끔 휘핑을 올리면 더할 나위가 없다.
술이 더 이상 쓰게 느껴지지 않으면 어른이 된 거라고 보통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알콜 쓰레기인 나는 그 말에 공감이 어렵다.
나는 커피에 그 공감을 했다.
커피가 더 이상 쓰게 느껴지지 않으면 어른이 된 거라고. 나는 고3 때의 그 학생이 아니라 이제 어른이 된 거라고.
부모라는 책임, 어른이라는 책임, 사람들과의 관계, 딸과 며느리, 누군가의 아내라는 이름이 내겐 더 썼다.
하루에 커피를 3-4잔을 마시는데, 문득 그중 커피의 향과 맛을 오롯이 느끼며 갖는 티 타임이 한 달 중 몇 번이나 되는지 생각해봤다.
아마도 없는 것 같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