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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 Jan 04. 2025

이 안에도 행복은 있다.

 장애아이를 생각할 때면 ‘이렇게 낳아줘서 미안하고... 엄마인 나도 키우느라 참 애쓴다.’라는 자기 연민이, 둘째 아이에게 문제라도 있을라치면 ‘내가 큰 아이 치료에만 매달려서 둘째에게 소홀했던 부분이 있었나.’라는 죄책감이, 남편하고 트러블이 있을 때면 ‘우리 아이에게 장애가 없었더라면 더 알콩달콩 재밌게 살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 등등이 내 삶 기저에 깔려있다.


 나는 지금 내가 원하던, 상상하던 삶과는 전혀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이 안에도 행복은 있다.


  아이랑 수천번 연습해서 아이가 상황에 맞는 한 문장을 스스로 내뱉었을 때, 하지 못했던 노래를 흥얼거리게 되었을 때, 스스로 처음 변기에 앉아 응가를 했을 때, 스스로 자전거를 탔을 때 등등 10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하게 된 것들이지만 정상발달을 한 둘째에게선 느낄 수 없었던 벅찬 감격과 감사가 이 안에 있다.


 장애는 있지만 스스로도 애써서 크고 있는 아이의 순간순간이 그저 기특하고 예쁘다. 참 고맙다. 물론 장애아의 엄마로 살기 위한 스스로의 정신 승리라고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왕이면 좋은 생각을 택하기로 결정했다.


 아이의 장애는 나나 또는 아이의 어떤 죄로 인한 형벌이 아닌, 어쩌면 내가 모르는 크고 비밀한 뜻이 담긴 삶일 수 있다고... 이탈리아를 가려고 준비하고 생각했다가 비행기를 잘못 타서 네덜란드에 도착했을 때처럼, 딱 그 정도의 생경함뿐이라고... 아이의 장애는 그냥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계획하지 않았던 길일뿐이지 여기 역시 아름답고 평안한 곳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행복을 찾아 살기로 결심했다.


 아이가 아니었으면 평생을 모르고 살았을지 모를 ‘자폐’, ‘장애’ 이런 것들이 내 삶에 들어왔지만 ‘없어지지 않을 장애면 뭐 어때, 이렇게 순수하고 예쁜 내 새끼인 걸, 내가 많이 많이 사랑하며 함께 살아내야지!’라고 생각하며, 정말 그렇게 잘 살아내고 싶다. 아이로 인해 내 삶이 송두리째 흔들린 것 같은 억울함이 불쑥 올라오고, 건강한 다른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 평범해 보이는 그 삶이 너무 부러워 이따금 눈물을 쏟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내게 주어진 이 아이와의 소풍을 재밌고 행복한 추억들로만 씩씩하게 채워 나가려 한다. 파이팅, 모두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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