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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혁 Jul 24. 2021

(초단편소설) 405호가 날린 드론

삼복더위엔 입술에 붙은 밥알도 무겁게 느껴진다더니 대현이 딱 그랬다. 대현은 점심으로 편의점에서 산 참치캔을 따서 햇반에 비벼 먹었는데 밥알 두 알이 턱 아래 들러붙어 참치 기름을 질질 흘렸다.


대현은 대충 손가락으로 밥알을 떼어내고 선풍기를 약풍에서 강풍으로 올렸다. 그러자 온 방안을 뭉개고 있던 뜨거운 바람이 대현의 눈가를 찌르고 들어왔다.


집에 티브이가 없어 틀어둔 휴대용 라디오에선 사십도 가까이 오르는 폭염이 한창이라며 바깥 활동을 자제하라고 연신 떠들어댔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택배 배송을 하는 대현에게 그건 하나마나 한 소리였고 굶으라는 헛소리나 마찬가지였다.


대현은 오전 배송을 막 마치고 잠깐 집에 들러 끼니를 때운 참이었다. 두 다리 뻗어 누웠더니 천정이 핑핑 돌았다. 땀으로 흠뻑 젖은 등은 방바닥과 밀착해 강아지가 오줌이라도 지린 것처럼 티셔츠 밖으로 물기를 밀어냈다.


며칠 전 십오만 원짜리 중고 벽걸이 에어컨을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어차피 한 달만 지나면 구월인데 내년에 사자고 마음 돌린 것을 대현은 후회하고 있었다. 남들은 영혼까지 끌어 모아 아파트도 산다는데 뭐가 그렇게 아까워 십오만 원짜리 에어컨도 하나 사지 못하고 이렇게 노랗게 물들어가는 천정만 바라보고 있을까.


그래도 대현은 자신이 악착같이 만 원짜리 한 장이라도 아끼고 모아 지금 사는 다세대 주택 월세 보증금 삼백만 원이라도 맞춘 거라고 위로했다.


그러다 문득 대현은 맞은편 집이 궁금했다. 맞은편 다세대 주택도 대현이 사는 집주인이 전월세 돌리는 곳이었는데 이십여 세대가 다닥다닥 에어컨 실외기를 창밖으로 내보이고 붙어있었다.


얼마 전 문득 대현이 창밖을 보면서 아무 생각 없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그 이십여 세대 중 유일하게 한 곳만 에어컨 실외기가 없었다.


대현은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봤다. 모든 에어컨 실외기가 열심히 열기를 대현이네 집으로 내뿜는 가운데 역시나 한 곳만이 실외기 칸이 텅 빈 채로 조용했다.


안에 사람은 있는 걸까. 저 층수에 저쪽이면 사백 오호인데 저기엔 누가 살까. 창문도 닫혀 있는 걸 보니 이런 폭염에 문을 여는 게 오히려 더 덥다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가끔 내가 그러는 것처럼 너무 더워서 어디 현금인출기가 있는 곳이라도 가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이 주렁주렁 더위 먹은 것처럼 열리던 중 맞은편 창문이 열리고 대현 또래로 보이는 한 여자가 밖을 내다봤다. 한 번도 그 집 창문이 열리는 걸 본 적이 없었는데 왜 하필이면 이때 창문이 열리고 사람이 얼굴을 내미는 걸까. 건물주님의 두 다세대 주택은 동 간 거리가 무척이나 짧은 닭장 같아서 대현은 그 여자가 점심으로 김치찌개를 먹다가 흘린 것처럼 보이는 티셔츠 가슴팍의 빨간 국물까지 다 보였다.


대현은 당황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지만 이미 눈을 마주쳐 시선을 돌리기도 무안했다. 그런 대현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자는 대현을 보더니 놀란 기색도 없이 배시시 웃었다. 저 여자도 이쪽 동에서 에어컨 없는 집은 여기뿐이라는 걸 아는 걸까. 대현은 괜한 부끄러움이 밀려오는 것 같은 묘함을 뒤로하며 어색함을 깨기 위해 여자를 따라 멋쩍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여자는 오른손으로 얼음이 잔뜩 든 봉지를 머리에 올리더니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긴 머리를 치렁치렁 흔들기 바빴다. 얼마간 그러더니 대현에게 잠깐 기다리라는 듯 손바닥을 펴 보이며 까딱였다. 대현은 의아했고 자기가 뭘 이해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알겠다고 끄덕였다.


여자는 창문에서 잠깐 사라지더니 드론을 가지고 와서 창문 밖으로 띄웠다. 드론은 작은 손가방을 줄로 매달고 대현에게 날아왔다. 동 간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여자가 조종하는 드론이 대현한테 오는 건 오초면 충분했다.


여자는 대현에게 가방 안에 있는 걸 꺼내라는 듯이 손가락으로 네모를 그린 뒤 가져가라고 손짓했다. 대현은 순간 이런 비싼 드론을 살 바에야 십오만 원도 안 되는 중고 에에컨이라도 사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걸 참았다.


대현이 가방을 열자 안엔 비타민 음료가 들어있었다. 그리고 비타민 음료엔 '더운데 배송 힘드시죠? 저희 집도 자주 와주셨을 텐데 드시고 힘내세요'라고 적힌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


아마도 여자는 대현이 입은 택배기사 작업복을 창문에서 보고는 이 동네를 담당하는 택배기사로 안 모양이었다.


대현은 되돌아가는 드론을 보면서 연신 고개를 꾸벅이며 "감사합니다"라고 여자에게 크게 말했다.


한 손으로 드론을 받아 쥔 여자는 반대 손에 든 얼음 봉지를 머리에서 이마로 내려 눈을 반쯤 가리고 웃었다. 둘 사이엔 양쪽 동에서 마주 보고 돌아가는 에어컨 실외기 소리만 윙윙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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