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정혁 Jan 03. 2024

(초단편소설) 마지막 대사

빨간 버스를 물끄러미 보던 시절이 있었다. 서울과 경기도를 잇는 그 광역버스 말이다. 버스 안에는 꾸벅이는 머리들이 가득했고 좌석마다 부여잡는 졸음들이 입김으로 새어 나왔다.


그들을 보며 창밖에서 자전거를 타던 나는 안도와 애도를 교차했다. 호기롭고 무계획하던 룸펜의 시절이었다. 그때 나는 저들이 지금 내가 아니라는 마음과 함께 저들이 언제고 내가 될 것이란 마음 사이에서 서성였다. 끝을 알며 사는 백수의 시간이란 그런 것이었고 룸펜의 끝이 왔을 때 나는 마지막 장면을 찍는 배우처럼 무던히 그 카메라 앞에 섰다.


어디서 출근하세요. 몇 시에 나오세요. 얼마나 걸려요. 집에 가면 몇 시쯤 되세요. 모이면 얘기가 나온다. 작가가 마지막에 써놓은 대사처럼 줄줄이다. 대답과 대꾸 사이에서 서로가 오가는데 상대도 그렇게 나올 때면 우리는 흡사 얇은 끈으로 묶여 동질감을 느낀다. 그래도 나은 편이네요. 저는 더 걸려요. 아예 세수를 회사에서 한다니까요. 차라리 저녁 먹고 가는 게 나아요. 비슷한 부류의 하나마나한 말들이 머리 사이를 수놓는데 차라리 허공에 사라지는 담배 연기 같다.


끝은 또 부동산이고 서울 집값이며 인구 감소와 저마다의 전망이다. 그러나 어디에도 정답은 없다. 그런 게 있었으면 이런 푸념은 나왔을 리 없고 앞서 배운 정답에서 뭐라도 건져 올렸을 테다. 지금도 여전하다는 것은 이전과 그 이전에서도 정답을 얻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그렇다면 애석하게도 앞으로도 정답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그저 그런 논리가 우선 튀어나온다.


그래도 좋았죠. 강릉에서 바다도 원 없이 보고 나름대로 호화롭게 살았으니까요. 가족 모두가 행복했고요. 정말 그랬겠네요. 맞아요. 돈은 나중에 벌 수도 있는데 시간은 그때뿐이에요. 그때 그 선택은 잘한 선택이에요.


여운을 남기는 영화 속 마지막 대사처럼 잘 쓰인 대본은 다시 읊어지고 '요즘의 대화'는 그렇게 진부한 클리셰로 막을 내린다. 그리고 나는 룸펜 시절 인연들에게 카톡을 보낸다.


새해인데 어때. 나도 똑같지. 이제 달려야지. 잘 놀았잖아. 그래도 그때가 좋았어. 열심히 살다 보면 또 기회가 있겠지.


진부함을 넘어 한글만 알아도 쓸 수 있는 대본이 이렇게 탄생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