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정혁 Feb 06. 2024

(초단편소설) 마지막 불꽃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말이 진실처럼 들렸다. 그것은 정후가 아무리 부인하려고 해도 귀에 직접 들린 사실의 말이었다. 그 명확한 사실 앞에서 정후는 단번에 이 언어가 진실이라고 확신했다. 멀뚱히 땅만 쳐다보고 있는 정후를 보며 다연은 눈물을 글썽였다. 자기가 뱉은 말이었어도 막상 접하니 큰 괴물로 다가와 다연은 더 눈물이 북받쳤다. 사랑해서 헤어지려 한다는 말장난을 두고 다연은 그 말이 순식간에 커다란 벽으로 진화해 고개 숙인 정후를 가로막는 것처럼 느꼈다. 정후는 눈시울이 붉어진 다연을 그 자리에 두고 돌아서서 카페 밖으로 나갔다. 다연은 정후의 뒷모습을 보며 비로소 커다란 벽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벽이 필요 없을 정도의 멀어짐을 뜻했다.


정후는 모든 걸 정리하기로 했다. 앞만 보고 달려왔던 삼십 대 중반 일 중독자는 가진 것을 내려놓기로 했다. 인생의 한 페이지를 억지로 찢어내고 다른 이야기를 쓸 때였다. 정후는 집을 팔았다. 일 년 뒤 다연과 함께 사는 것을 목적으로 구매한 작은 원룸이었다. 급한 대로 부동산에 아무렇게나 처분해 달라고 했다. 짐들은 몽땅 처분했다. 차는 동생에게 넘겼다. 직장엔 대학원 진학을 이유로 사표를 냈다. 하루 만에 이 모든 것이 속도를 내자 정후는 무작정 친구가 사는 호주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옷가지와 몇 권의 책이 든 캐리어 가방 두 개로 정후의 신변은 단출하게 정리됐다. 일단은 호주 농장에서라도 일하겠다는 생각 외에 정후 머리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정후가 비행기에 오르기까지 이 모든 정리는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다연은 이직 준비를 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잡지사 생활을 접고 평범하고 조용한 업종의 직장인이 되겠다는 뜻에서였다. 소문에서 가장 먼 쪽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다연은 늘 해온 터였다. 이력서를 넣고 또 넣어 다연은 중소기업 총무 입사를 확정했다. 보름 뒤 출근하기로 다연은 새 회사와 합의했다. 정후와 수많은 추억이 깃든 원룸도 지방 발령을 둘러대 주인과 계약 해지했다. 이 모든 정리는 열흘이 걸리지 않았다.


둘은 사내 커플로 만나 불같이 사랑했다. 감정 표현에 서툰 정후와 달리 다연은 좋고 싫음을 분명히 표현했다. 처음엔 다연이 그런 정후에게 다가갔다. 자석의 N극이 결국은 정반대의 S극을 보는 것처럼 정후는 당차고 활발한 다연에게 끌렸다. 그렇게 둘은 비밀 연애를 시작했다. 말과 말이 온갖 정보로 확대 재생산되는 출판 업계에서 둘은 서로를 언어의 통로에서 보호하며 연애했다.


유리병처럼 투명하던 사랑에 금이 간 건 비밀이 더는 비밀이 아니게 되었을 때다. 다연이 메신저 창을 끄지 않고 잠깐 자리를 비웠을 때 비밀은 탄로 났다. 안 그래도 정후는 다른 남자들이 다연에게 관심을 보일 때마다 불안했다. 불안은 점점 커져 다연이 자기를 만나기에는 더 아깝다는 자기만의 확증편향을 연료로 태워 큰 불이 됐다.


사람들은 그때부터 원룸 더하기 원룸을 얘기했다. 출판업계의 열악한 환경과 강도 높은 노동이 첫째였다. 나아가 본질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둘의 원룸과 원룸을 더하면 투룸이 아닌 제자리 원룸이 될 것이라는 불구경이었다. 출판사 여자는 그럴듯한 직장 있는 남자를 만나는 것이 아니면 더는 출구가 없다는 자조 속에서 다연은 미로에 스스로 갇힌 사람이었다. 당연하게도 정후는 번듯한 직장 없는 자본주의 말단 구성원에 불과했다.


모든 것이 물질 숫자로 기억되는 시대에서 어째서 원룸에 원룸을 더하면 투룸이 아닌 다시 원룸이 되는지 이 둘은 애써 외면하며 연애했다. 숫자의 시대라면 일에 일을 더하면 당연히 이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현실 드라마 앞에서 정후는 아이를 필수로 생각했고 다연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좋은 옵션으로 규정했다. 


여기서 벌어진 간극의 대화는 떨어지는 출산율 통계부터 둘의 생애 소득까지 숫자로 연결되었고 서울을 벗어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연봉과 지출이라는 뺄셈으로 귀결됐다. 그 결과 둘은 원룸에 원룸을 더하면 투룸이 아닌 도로 원룸일 수밖에 없다는 주변 평가의 정당성을 체감했다. 그것은 사랑의 시작이 불꽃일지언정 불꽃이 계속 불꽃일 수 있는 이유는 장작이 계속 공급되어야 한다는 산술에 이르렀다. 덧셈이 뺄셈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마법의 계산을 그들은 살면서 처음 느꼈다. 이런 방정식이 옴짝달싹할 수 없는 사실이라면 불꽃이 자동소멸되기 전에 한때의 불꽃으로 남겨두고 돌아서야 한다는 결론을 다연부터 내렸다. 정후 역시 다연의 그런 결론을 끝을 알고 보는 영화라는 비유로 합리화해 순순히 받았다.


여전히 나를 사랑해. 다연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사랑이 지속될 수 있다면 계속 사랑하지. 정후는 마지막 자존심을 담아 답했다. 불꽃은 마지막 장작에서 타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초단편소설) 마지막 대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