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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혁 Aug 18. 2024

(초단편소설) 한남고가

꾸벅이는 고개 속에서 찬우가 실눈을 떴다. 허기지면 배가 꼬르륵하듯이 내릴 때가 오면 눈은 억지로 빛을 받았다. 창밖에 늘어선 차 위로 해가 움터 월요일 아침을 버스 안으로 찔러댔다. 겨우 깬 아침잠은 버스에서 이어졌고 대게는 이런 식으로 조각났다. 어깨와 해가 수평에 가까워질 때가 마침 내리기 직전에 가까웠다. 버스는 한남고가 고가 위를 앞차와 발맞춰 기어올랐다. 오른편에선 해가 차창을 때리고 찔렀고 왼편에선 동시대를 사는 또 다른 시공간의 군상들이 엿보였다.


오늘 재밌는 걸 발견했어. 한남고가 있잖아. 출근길에 거길 지나면 어쩌다가 집안이 보여. 그 있잖아. 연예인들이나 돈 많은 사업가들 많이 산다고 뉴스에 나오는 그 고급 빌라 단지 말이야. 보통은 집에 커튼이 쳐져 있어서 안까지 보이는 일은 없는데 오늘은 한 집이 창문까지 열어뒀더라고. 그래서 거실을 봤지. 마침 버스도 서 있었거든. 근데 신기한 게 거실에 빨래 건조대를 세워뒀다. 그리고 거기에 온갖 옷을 늘어놨더라고. 건조기 하나 없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약간 우습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더라고. 우리 집도 있고 요즘 어지간한 집은 건조기 다 있을 텐데 말이야.


아내와 자질구레한 집안일을 마치고 소파에서 맥주 한 캔 따는 게 찬우의 낙이었다. 이날 찬우는 아내한테 이렇게 말했다. 안방에선 이제 겨우 돌잡이를 끝낸 아이가 새근거리고 있었다.


빨래 건조대라고? 신기하긴 하네. 거기 아예 세금 아끼려고 매매할 수 있어도 월세 사는 사람들도 있다며. 월세가 무슨 이천만 원씩 한다는 얘기도 있던데. 근데 거실에 빨래를 걸어놨다는 얘기야?


응. 그러니까 말이야. 그런데 또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들더라고. 도저히 건조대로 돌릴 수 없는 망가져선 안 되는 고가의 옷이나 그런 건 아닐까 하고. 근데 또다시 생각해 보면 그런 옷이면 명품만 취급하는 세탁소나 그런 곳 있대잖아. 거기 맡기면 되는 거 아닐까 하기도 했고. 아무튼 아침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일이 힘들 때마다 어째 그 생각이 떠나질 않더라니까. 약간 알 수 없는 안도감과 웃음 같은 거 말이야. 사는 게 참 비슷한 건가. 그런 자기 합리화 혹은 미묘한 안도감. 그래서 퇴근길에도 혹시나 해서 봤는데 역시나 불 켜진 것만 보이고 커튼이 처져 있더라고 아무튼 신기한 하루였어. 내일도 모레도 그 집이 궁금해서 보지 않을까 싶어.


그런데 그렇게 한남고가에서 안이 보이는 집이면 거기 사는 사람들은 싫지 않을까? 엄청나게 비싼 집이고 사생활을 그렇게 중시하는 사람들일 텐데 어찌 그렇게 수많은 차들이 지나다니면서 보려고 하면 보이는 그런 곳이 있지?


그럴듯한 아내의 질문이었다.


아마도 그 단지 중에 그래도 제일 저렴한 곳이 아닐까. 그 안에서도 비싸고 덜 비싸고 그런 건 있을 거 아냐. 어차피 다들 언감생심일 테지만 말이야.


아니.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 아예 그들은 차창 밖에 높은 이층 버스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을 걸. 어떤 길거리에 피어 있는 이름 모를 잡초 정도로밖에 인식되지 않을까. 자기들은 버스를 무심하게 봤는지 어땠는지도 모를 정도로 일상을 살고 그마저도 그들 버스 안에서 누군가 이쪽을 볼 수도 있다는 시선 따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끼고 사는 그런 인식들 말이야.


찬우는 아내의 설명이 우문현답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찬우는 한남고가에서 고개를 빼꼼 돌렸지만 그 집 안은 보이지 않았다. 출근길 아침에도 퇴근길 저녁에도 커튼이 늘 쳐져 있었다.


버스는 한남고가를 붕 떠서 올랐다가 살며시 내려왔고 앞뒤로 늘어선 차들은 밖에선 알 수 없는 표정들을 버스처럼 실어 날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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