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보면 매번 ‘사랑’을 접해. 너무 많은 책이 사랑을 얘기하기 때문이야. 주제든 소재든 사랑을 녹이지 않은 책은 드물어. 세상만사를 분석한 건조한 책도 결국엔 그 안에 인간사를 통과한 다양한 사랑을 담더라. 상황이 이런데 은연중에라도 사랑을 가리키지 않는 책을 찾는다는 건 빵집에 가서 우유가 들어가지 않은 빵을 찾는 것과 같아.
그래서 나는 서점을 갈 때마다 무수한 책을 보며 ‘어쩔 수 없이 내가 모르고 멋쩍어하는 사랑을 오늘도 접하는구나’라고 생각해. 책들은 장르만 다를 뿐이지 결국 세상에서 말하는 사랑이라는 한 단어로 묶일 수 있거든. 심지어 사랑이 전혀 녹아있지 않는 책을 가져와도 나는 그 안에 사랑이 스며들어 있다고 주장할 수 있어. 왜냐하면 그 저자는 자신의 삶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만족감을 위해 자기 이름이 적힌 책을 썼기 때문이야.
한편으론 이 모든 ‘사랑 현상’이 흥미로울 때도 있어. 어쩌면 모두가 사랑이 뭔지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책에서 사랑을 얘기하는 것 같아서야. 숫자 1 더하기 1이 2가 된다는 점은 사랑처럼 수많은 책이 떠들진 않아. 그것은 1에 1을 더하면 2가 된다는 것이 명확해서야. 누구도 1 더하기 1이 3이 되거나 4가 된다고 떠들 필요를 못 느끼기 때문이지. 다르게 생각하면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책이 사랑을 이렇게도 얘기하고 저렇게도 설명하는 건 아닐까 해. 저마다의 사랑 설명을 귀 얇은 이에게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 이따금 나는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정답은 없으니까.
남녀의 사랑만 한정해서 보면 누구는 사랑하는 이를 바라만 봐도 가슴이 떨리고 눈물이 난대. 또 다른 누구는 평생 그 사랑의 깊이가 깊어져 죽을 때까지 뼛속을 달콤하게 파고드는 일이 지속된대. 또 누구는 한순간도 사랑하는 이를 머리에서 잊을 수 없으며 그게 무의식에라도 늘 내재해 자신의 모든 행동을 바꾼다고도 해. 사랑이라는 추상을 두고 이걸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이런 쪽과는 거리가 멀어. 일평생 심장박동이 멈추지 않고 람보르기니처럼 달려 나간다는 누구의 사랑을 나는 믿지 못하겠어. 백두산 천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사랑의 깊이가 계속 깊어진다는 이름 모를 사랑꾼의 주장도 나는 인정하지 못하겠어. 일분일초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건 무의식이 고장 난 것이라는 똑똑한 이의 해부학적인 사랑 역시 나는 동의하기 힘들어.
다만 나는 나만의 사랑이 뭔지 확실히 알아. 그것을 저들처럼 주장하라면 충분히 책 한 권 분량으로 써낼 자신이 있어. 그렇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스스로 사랑하는 이와 인생이라는 긴 항해의 여정을 함께 하고 싶어 한다는 정의야. 누구도 끝을 알 수 없고 누구도 누구의 인생을 대신 살 수 없어 모르는 인생이란 험로를 같이 걸어가는 것은 아닐까. 사랑이 무엇이냐고 누가 물으면 나는 이런 대답이 먼저 나올 정도로 머리에 박혀 있어.
우리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내가 강조했던 말도 그랬어. 우리는 인생이라는 거친 바다를 즐겁게 항해하기 위해 가정이라는 돛단배를 만들었고 거기에 아이도 탑승한 거야. 그리고 우리는 아이와 함께 가정이라는 돛단배가 더욱 건강하고 튼튼해져 저 유명한 페리호 못지않게 진화할 수 있도록 꾸려나가는 거야. 돛단배는 그저 그런 파도에 휩쓸릴 수 있지만 멋지고 단단한 페리는 어설픈 파도 따위는 쉽게 통과할 수 있으니까.
그만큼 우리는 함께 꾸리는 가정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들을 쓰고 있는 거야. 혼자 바라만 보던 망망대해 앞에서 배 한 척을 건진 것도 기적이고 그것을 더 튼튼하게 만들어 가며 바다를 항해하는 과정은 더 멋진 기적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그런 배를 움직이는 연료 역시 사랑이라고 나는 오늘도 자신하고 있어. 사랑을 정의하는 다른 이들과 달리 매일매일이 즐거울 수 없고 매일매일이 가슴 떨릴 수 없다는 걸 인정하지만 결국은 바다를 건너는 기적을 쓸 수밖에 없도록 하는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고 가정이라는 배를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해.
나는 그러한 나만의 ‘사랑 정의’를 가지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 우린 앞으로도 함께 할 것이고 사랑을 먹고 마시고 얘기하며 사랑할 것을 확신해. 사랑해. 그리고 생일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