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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혁 Aug 14. 2021

(초단편소설) 강아지가 뭐라고 했냐면

은설은 오늘도 서울에서 어떻게 살다가 왔는지 얘기해달라는 은지의 채근에 시달렸다. 어떤 사정이 있어 부모님도 없이 갑자기 이렇게 작은 시골 마을로 오게 됐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이었다.


“그냥 뭐 이것저것 했는데 지치고 재미도 없었어. 조용한 이곳에서 조용히 살고 싶은 게 다야. 부모님도 계신데 크게 연락할 일은 없어. 나 찾지도 않을 거고. 그냥 다 별 거 없어. 잊을만하면 물어보는데 은지야 이제 그만 물어봐. 아직도 그 얘기니.”


은설의 배시시 웃음에 은지는 고개를 저었지만 포기하는 눈치였다. 그러다 은지는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며 목소리를 낮췄다.


으레 별일 아니었지만 무료한 시골에선 퍽이나 큰일인 것처럼 은지는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렇게 시작돼 나온 말은 황당했다. 연지는 강아지가 하는 얘길 알아듣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은지는 황당해서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연지는 말하는 내내 진지했다. 연지 말로 그 사람은 칠십 대 노인이었는데 오 년 여전부터 치매를 앓더니 최근 불가사의한 이런 능력을 얻었다고 했다.


이를테면 옆에서 강아지 짖는 소리를 듣고는 그걸 마치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자기 입으로 내뱉는 식이었다.

누구나 처음 들으면 우스워서 콧방귀를 뀌는 게 당연하겠지만 현실에서 사례 입증을 거쳤다는 점에서 무시할 수만은 없다고 연지는 침을 꼴깍 삼키며 은설을 다그쳤다.


“진짜라니까. 엊그제 저쪽 담쟁이마을 있잖아. 거기서 이제 막 두 살이나 됐나. 아무튼 그런 강아지가 짖을 때 그 사람이 옆에서 통역 비슷한 걸 했다니까. 글쎄 그 집 강아지가 주인 보면서 멍멍 짖을 때 그 사람이 옆에서 ‘나 소금물 좀 줘. 풀을 잘못 뜯어먹어서 곧 토할 것 같아. 게우고 싶어’라고 했다니까. 주인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면서 무시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조금 있다가 강아지가 낑낑거리더니 토를 했대.”


연지의 일장연설은 그치지 않았다.


“또 한 번은 누렁이 강아지가 하도 백구를 따라다니면서 집에도 안 들어와서 그 집주인이 그 사람을 불렀나 봐. 그런데 웬 걸. 누렁이가 엄마엄마하고 따라다니는 것처럼 그 사람이 백구를 쫓아가는 누렁이를 뒤따라가면서 흉내를 내더래. 생각해봐. 백구가 어떻게 누렁이를 낳지? 그럴 가능성이 얼마나 돼. 근데 하도 이상해서 동물 병원에 가서 누렁이랑 백구 유전자 검사를 했더니 놀랍게도 누렁이 엄마가 백구가 맞았대.”


발 없는 말이 천리를 달린다고 했는데 시골의 발 없는 말은 그 천리를 구 초 팔사에 주파한다고 했던가.


은설은 아직 청춘이었지만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산으로 둘러싸인 시골 마을에 정착한 지 일 년이 되어 이제는 적응 좀 했다고 자신했다. 그렇지만 이따금 전혀 다른 이런 세계관을 접할 때마다 당황스러웠다.


초록 물결 동네에서 자신과 나이가 같은 서른다섯의 연지가 있다는 건 은설에겐 기적에 가까웠다. 그런데 하필 그런 연지가 이런 엉뚱한 사례를 들고 왔으니 은설은 이걸 어찌해야 하나 싶었다.


연지의 장황한 연설은 은설이 시골 생활을 위해 이곳에 오기 직전에 분양받아 데려온 자신의 강아지 ‘초록이’도 한번 그 사람 통역을 들어보자는 말로 이어졌다.


두 살도 안 된 은설의 강아지 초록이는 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려온 은설의 유일한 식구였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그렇다고 그게 다 믿을 만한 일이야? 그리고 초록이 말 들어서 뭐하게. 괜히 전 주인한테 버려지기 전에 가슴 찢어지는 얘기 하면 어쩌려고.”


은설은 애꿎은 잡풀만 손으로 뜯어 바람에 날리며 대꾸했다. 은설과 연지가 앉아있는 원두막 앞으로 장맛비를 한껏 들이마시고 자란 잡초들이 무성히 흔들렸다.


“얘는 뭐가 그리 심각해. 그냥 얘기 들어보고 뭐 재미난 일이 있으면 같이 재밌어해 주고 들어줄 수 있는 거 있으면 들어주고 하는 거지. 도시 애들은 너무 걱정이 앞서고 심각하다니까.”


이곳에서 나고 자란 연지는 은설이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내보일 때마다 ‘도시 애들’이라며 구분 짓곤 했다. 그것은 시골엔 시골의 삶의 방식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도통 서울 살던 시절 얘기를 하지 않을 것이라면 완전히 이곳의 방식이라도 익히라고 연지는 매일 같이 은설에게 강요하던 터였다. 은설은 이번에도 은지의 제안을 거절하긴 어렵겠다는 예측이 스멀스멀 한구석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강아지 목소리를 듣는다는 칠십 대 그 사람은 확실히 할아버지라고 부르기엔 어딘가 부족했다. 치매라곤 하는데 온몸이 단정하고 깨끗했다.


특히 시골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피부가 희고 얼굴과 손에 잡티 하나 없었다. 어떻게 보면 조금 서늘하다 싶을 정도로 손마디 마디까지 전부 희여 멀건 했는데 연지 말로는 서울에서 제법 큰 회사 사장까지 올라갔다가 치매 확정 이후 가족들과 고향인 이곳에서 말년을 보내기 위해 귀농했다고 했다.


은설은 원두막에서 연지를 만나자마자 초록이를 살포시 내려놨다. 은지 옆에는 강아지 통역사 그 사람이 서 있었다.


초록이는 원두막 앞 잡초 사이를 데굴데굴 구르다가 깡충깡충 뛰며 제가끔 엉거주춤 놀았다. 그 사람이 가져온 사과를 내려놓자 큰 장난감이라도 본 것처럼 초록이는 낑낑 강아지 소리를 내면서 사과 주변을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그 사람은 뛰어노는 초록이를 따라다니며 “주인은 매일 밤 나를 괴롭히고 때려. 주인은 혼자 있으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돌변해. 주인은 정말 무서운 사람이야”라고 중얼거렸다.


은설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 사람과 연지를 번갈아 쳐다봤다. 은지는 놀랍다는 표정으로 눈을 휘둥그레 하게 떴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사람은 초록이와 허공을 번갈아가면서 보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은설이 소리쳤다. 그리곤 낑낑거리는 초록이를 번쩍 들어 안았다. 연지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바꿔 뜨면서 의아하다는 듯 멍하니 서서 은설을 바라봤다.


“지금 저 말 믿는 건 아니지? 애초 이런 시답잖은 일을 하는 게 아니었다니까.”


은설은 초록이를 안고 등을 토닥이며 언성을 높였다. 연지는 아무 말 없이 그런 은설을 쳐다보며 입을 삐죽거렸다.


그 사람은 초록이가 은설이 품에 안기자 종종걸음을 치더니 어느샌가 저쪽으로 걸음을 내뺐다. 그러면서 그 사람은 “사이코야. 사이코야”라고 소리쳤다.


은설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데 저런 말을 믿겠어? 우리 초록이 유기견센터에 있는 걸 내가 여기로 이사 오기 직전에 데려온 거라고. 그런 초록이를 말이야. 어떤 아픔이 있는지도 모르는 초록이를 내가 때린다고?”


은설의 높아진 언성이 점점 작아지면서 말이 끊겼다. 어쩔 줄 몰라하던 연지는 “저 사람이 오늘 왜 그러지”라는 말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너 저 말 믿는 거 아니지?”


“내가? 설마. 저 사람 오늘 좀 이상한가 보지 뭐.”


초록이는 은설이 품 안에서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대화가 끊긴 둘 사이엔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연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은설아 오늘 너네 집에서 저녁 먹고 자도 될까?”


연지는 은설이 품 안에 있는 초록이 눈빛을 살피며 평소보다 더 나긋이 말했다. 오늘따라 어쩐지 초록이 눈이 슬퍼 보인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나온 말이었다.


은설도 이를 눈치챘다. 은설이 보기에 연지는 그 사람 말을 완전히 못 믿는다는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는 중이었다.


“다음에.”


은설은 연지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둘 사이엔 더 긴 침묵이 깔렸다. 오해와 진실 사이 어딘가에 둘이 있는 것처럼 하늘 위 구름과 구름 사이 거리는 오늘따라 유독 멀어 아득하고 텅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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